입력 : 2025. 05.29(목) 03:00 수정 : 2025. 06. 01(일) 11:12
고대로 오소범 기자 hl@ihalla.com
쿠로시오 난류 지나는 제주 서부 끝단 저염분수 유입·수온 상승 관측 최적지 긴침성게 확산에 해조류 생태계 '비상' 작년 고수온 충격서 '회복 조짐' 주목
[한라일보]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마을어장은 제주도 서부 해역 최서단에 자리한 마을어장으로, 쿠로시오 해류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따뜻하고 빠르게 흐르는 이 해류는 남해안 어장을 형성하는 핵심 생태적 요소로, 생물 다양성과 해양 생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겨울철 방어 어장이 형성되는 가파도와 마라도 인근의 거센 물살은 이 난류가 만들어내는 해류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과리 마을어장 일대는 중국에서 유입되는 저염분수와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 등 복합적인 해양 환경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이다.
제주도 남부권역은 문섬과 범섬처럼 해류를 막아주는 지형이 있어, 그 일대에 고유한 서식 환경이 조성되지만 일과리는 지형적 방어막이 없어 외부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열대성 어류인 호박돔과 용치놀래기.
본보 해양탐사 특별취재팀은 이런 일과리 마을어장의 변화상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13일 제주특별자치도 해양수산연구원 마을어장 조사팀과 함께 수중 탐사를 진행했다.
늦은 봄 햇살 아래 스쿠버 장비를 착용한 조사팀은 일과리 어촌계 사무실 앞 조간대를 통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바닷속에 매설된 육상양식장의 취수관을 따라 수심이 깊은 곳으로 천천히 이동하자, 관 표면에는 단년생 갈조류인 불레기말과 미역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취수관이 끝나는 암반 해역에는 긴 줄기의 미역이 다량 부착돼 있었으며, 주변 암반에서는 해조류를 섭식하는 군소와 곤봉말미잘, 감태 유엽, 해면류, 석회조류, 그물코돌산호 등이 착생하고 있었다.
최근 일과리 마을어장 암반지역에 확산되고 있는 긴침성게의 모습.
탐사팀이 포획한 긴침성게.
갯녹음이 번진 암반 틈 사이로는 날카로운 가시를 뻗은 긴침성게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긴침성게는 열대 및 아열대 해역의 암반 지역에 서식하는 종으로, 최근 몇 년 사이 제주 연안까지 북상해 해조류 생태계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긴침성게는 미역, 우뭇가사리 등 다양한 해조류를 갉아먹으며 해중림 생육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일부 동남아 지역에서는 긴침성게를 식재료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갯녹음 면적은 10년 전보다 확연히 넓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갯녹음은 수심 8~9m까지 확산돼 있었다.
어장을 조사 중인 마을어장 조사팀.
해조류 밀집도를 조사하고 있는 조사팀.
한국수산자원공단은 2년 주기로 첨단 장비와 잠수 조사를 통해 제주 연안의 갯녹음 확산을 추적해왔는데, 2019년 16.89㏊였던 면적은 2023년 28.9㏊로 크게 증가했다.
양병규 제주도해양수산연구원 연구사는 "갯녹음이 늘고 있는데 이 면적만으로 수중 생태계의 건강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며 "과거 해조류가 우세했던 구역에 말미잘과 산호류 같은 종이 자리를 잡아가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종들은 공간 경쟁을 통해 먼저 자리를 잡은 생물이 우위를 점하는 경향이 있어, 단순한 면적 변화보다 종 구성 변화의 장기적 관찰이 마을어장 조사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석회조류와 그물코돌산호가 착생하고 있는 암반에 부착한 미역.
암반에 단단하게 부착한 미역.
양식장에서 설치한 취수관에 붙어있는 단년생 갈조류인 미역.
이번 조사에서 특별취재팀은 수심이 깊은 해역에서 감태 등 홍조류를 다수 포착했다. 홍조류는 수온 변화에 비교적 강하고, 바닥에 단단히 부착돼 있어 태풍 등 외부 충격에도 잘 견딘다.
조직이 질겨 소라나 성게의 섭식에도 비교적 강한 편이어서, 최근 제주 연안에서 홍조류가 상대적으로 우세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기록적인 고수온은 제주 해양 생태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줬다. 2024년 9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 28~30℃의 고수온 현상은 수심 10m 해역까지 영향을 미쳐 해조류의 급격한 소실을 초래했다. 수온에 민감한 미역과 우뭇가사리는 시들어 결국 사라졌고, 이는 일과리 마을어장뿐 아니라 제주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현상이었다.
해조류를 섭식하는 검은테군소.
먹이활동 하는 소라.
다행히 올해 겨울은 평년보다 비교적 낮은 수온을 기록하면서 일부 해조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심 10~15m 부근에서는 감태 유엽이 곳곳에서 관찰됐다.
양 연구사는 "올겨울 낮은 수온 덕에 감태가 자라기 시작했지만, 여름에 다시 고수온이 반복되면 이들의 생육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생태계 변화는 급변하기보다, 어떤 종은 강해지고 어떤 종은 점차 사라지는 식으로 진행되며, 앞으로도 면밀히 관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해양탐사취재팀: 고대로 편집국장·오소범 기자, 수중영상촬영: 오하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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