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훈의 한라시론] 제주 중산간 마을의 물 문화

[진관훈의 한라시론] 제주 중산간 마을의 물 문화
  • 입력 : 2025. 05.29(목) 01:30  수정 : 2025. 05. 29(목) 10:1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어릴 적 할머니네 집에 가면 마당 한쪽 나무 밑에 큰 항아리가 몇 개 있었다. 그땐 그게 '촘항'인 줄 몰랐다. 난 '멘주기(올챙이)' 잡는 재미에 그 근처를 자주 들락거렸다. 잎이 넓은 나무 둥치에 '새(띠)'를 댕기 머리처럼 엮은 '촘'을 놓아두게 되면 빗물이 촘을 타고 항아리에 담기게 된다. 이 물을 '촘물'이라 했는데 촘항은 이 물을 받아두는 항아리다.

제주도는 연평균 강수량이 1900㎜나 되는 다우지역이다. 연간 강수량은 총 33억9000만t에 이른다. 하지만 그중 44%(14.9억t)가 지하로 빠져 버리고 37%(12.6억t)가 증발산 돼 사라진다. 그런 탓에 사용 가능한 물이 한참 모자랐다. 오죽했으면 초가지붕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지샛물 혹은 지신물)을 받아 빨래 등 생활용수로 썼을 정도였다.

제주 도내 용천수 646곳 중 해발 200m 이상 용천수는 65곳이다. 이들 용천수조차 한라산 남북사면에 주로 분포돼 있어 나머지 중산간 마을은 부득이하게 빗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중산간 마을의 물은 하천수와 봉천수였다. 봉천수는 암반이나 점토층의 요(凹)지에 모인 빗물을 말한다.

예전 해발 200m~600m 중산간 마을에서 물을 구하는 방법은 '소(沼)'에 고인 물을 긷거나, 물통을 파서 봉천수를 이용하거나, 비 올 때 나무를 타고 내리는 빗물을 모은 촘물이다.

'소'는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난 지형으로 하천에 현무암이 아닌 다른 암석으로 바닥이 이루어져 물이 고이게 된 작은 연못을 말한다. 대부분 마을이 형성되기 전부터 있었다. 중산간 지역에는 비록 건천이기는 해도 비 내린 뒤 하루 이틀 물이 흐르고 나면 물 빠짐이 적고 움푹 들어간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기 마련이다. '죽은 물'이라 불리는(용천수는 '산 물'이라 불렀음) 이 물을 제한적이나마 생활용수로 이용했다.

물통은 중산간 마을이 생긴 이후 주로 봉천수를 얻을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물통은 '구진물(나쁜물)'이라 부르는 생활 용수통과 '곤물(고운물)'인 식수통을 따로 만들었다. 물통에 담긴 물을 깨끗이 하기 위해 흙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주위에 촘촘히 돌을 쌓았다. 특히 식수로 사용되는 물통 주위로 소나 말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물통 주변에 나무를 빽빽이 심었다. 또 물을 긷기 편하게 하려고 하나의 출입구를 통해서만 물통을 사용할 수 있게 했으며, 여기에 계단을 설치해 수위에 맞춰 물을 쉽게 뜰 수 있게 했다. 제주 선인들의 삶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얼마 전 제주시가 예전 제주의 생명수 역할을 했던 용천수를 복원해 마을 공동체 중심의 생태·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제주개발공사에서는 제주 청정 지하수 보전과 활용 방안 모색을 지원사업으로 진행할 예정이라 한다. 반갑고 흐뭇한 일이다. 이제라도 서둘러 해야만 할 도민 숙원 사업이다. <진관훈 제주문화유산연구원>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4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