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연유산 등재 10년](2)세계의 보물섬으로

[세계자연유산 등재 10년](2)세계의 보물섬으로
"삼천리 금수강산… 세계자연유산 등재로 재확인"
  • 입력 : 2017. 04.21(금)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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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은 우리나라로서는 한 번도 제대로 도전해보지 못한, 또 쉽게 도전할 엄두조차 내보지 못한 '벽'이었다. 그 일을 제주가 해냈다. 때로는 좌절하고 숱한 고난이 닥쳤지만 천혜의 보고인 제주섬을 인류의 자산으로 남겨 대대손손 유산으로 넘겨주려는 올곧은 신념과 지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은 성산일출봉과 한라산의 모습.

난관 이겨내고 불가능을 현실로… 제주 저력 과시
이수성 전 총리 위원장 추대·150만 등재기원 서명
IUCN 등재 권고·세계유산위원회 만장일치 지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은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아름다움과 독특한 가치를 가진 자연유산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국제적 위상이 한단계 높아지는 국가적 영광이다. 돌과 바람, 오름과 바다, 독특한 문화와 수려한 자연이 한 곳에 있는 곳. 바로 제주섬이다. 이 섬이 한반도 최초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올해가 10주년이다.

2007년 6월 27일은 제주의 저력을 다시한번 만방에 떨친 날이며, 동시에 '천년 왕국'을 호령했던 탐라의 르네상스를 또다시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한국은 지난 1994년 유네스코가 시행하는 세계유산 등재 사업에 뛰어든 이래 자연유산은 단 한 건도 등재시키지 못해 왔다. 1997년 처음으로 설악산을 자연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제주의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 까지의 과정은 참으로 험난하고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시작 당시만 해도 꿈같던 얘기였다. 계획된 기간에 등재 신청서 조차 내지 못하고 학술조사와 관리계획을 수차례 다시 수립하는 일이 반복됐다. 심기일전해 2006년 1월 진통끝에 신청서를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었다. 이수성 전 총리를 위원장으로 추대한 가운데 등재추진위원회도 면모를 새롭게 갖춰 본격 출범시켰다. 김숙 대사 등 외교관료 출신 인사 등이 등재추진위원회에 합류, 힘을 보탰다.

제주섬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 까지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때로는 좌절하고 숱한 고난이 닥쳤지만 천혜의 보고인 제주섬을 인류의 자산으로 남겨 대대손손 유산으로 넘겨주려는 올곧은 신념과 지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계자연유산 등재기원 범국민 서명운동에는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150여만명이 동참했다. 사진=한라일보 DB

그 중심에 탐라의 주역들이 있었다. 압권은 한반도는 물론 지구상에도 유례가 없는 등재기원 범국민 서명운동이다. 이 운동은 한편의 '감동의 드라마'였다. 가마솥 더위가 한창이던 2006년 8월 16일 '범국민 100만 서명운동'이 출정식과 함께 닻이 올랐다. 어느 누구도 이 운동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세계유산 등재를 선도해 온 한라일보도 이 때를 맞춰 국내 언론사상 최초로 인터넷 서명운동에 뛰어들었다.

호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코흘리개 고사리손에서부터 남녀노소, 국내·외 관광객, 해외동포, 금융·관광업계, 기업체, 새마을단체, 전국의 지자체, 의회, 한국기자협회 등에 이르기까지 연령, 계층을 가리지 않고 전국이 서명운동으로 들썩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국무총리, 국회의장, 정부 장·차관, 심지어 드라마 촬영 스텝 등도 서명대열에 동참했다. 대학생들은 자전거를 이끌고 국토 대장정 캠페인에 나섰다. 제주도는 미국에서 열린 여행업 총회에 참석해 외국인들의 서명부까지 받아왔다.

서명인은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150여만명에 이르렀다. 제주도민들은 감동했으며 제주의 저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등재 기원 서명운동은 '제주화산섬, 용암동굴'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소망하는 매우 의욕적이고도 상징적인 발걸음이었다. 이는 제주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편의 '감동의 드라마'였으며 제주도민과 관계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기폭제가 됐다. 동시에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아름다운 제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보여준 쾌거였다. 이처럼 제주지역의 이슈가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우리나라도 세계자연유산을 보유하자는 범국민적 열망과 그것을 올곧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기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6년 여름 제주를 찾은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실사단은 등재기원 서명캠페인은 유례가 없는 일로 평가하면서 시민사회의 지지와 참여에 대한 탁월한 사례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IUCN은 수차례의 심의와 패널회의를 거쳐 제주에 대해 등재권고 결정을 내림으로써 등재 가능성에 대한 청신호를 켰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07년 6월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열린 제31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IUCN의 이같은 등재권고를 만장일치 지지속에 제주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최종 등재의결했다. 제주섬이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라는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내외 도민과 온국민의 기원, 정성이 모아진 결과였다. 당시 정부 대표단장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삼천리 금수강산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감격해 했다.

그로부터 3년이 조금 지난 2010년 10월 또 하나의 낭보가 전해졌다. 제주도 지질공원이 세계지질공원으로 확정된 것이다. 낭보는 유럽지질공원총회가 열린 지중해 연안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전해졌다. 세계지질공원네트워크(GGN) 운영위원회는 한국의 제주를 포함해 11개국, 15개소에 대한 최종 심사와 평가를 거쳐 제주도를 세계지질공원으로 확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을 시작으로 2007년 세계자연유산을 등재시킨데 이어 세계지질공원을 인증시킴으로써 세계에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의 '3관왕' 트리플크라운의 위업을 이룬 순간이었다. 세계지질공원 인증 역시 세계자연유산에 이어 제주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강시영 선임기자·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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