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당굿 기록](17)故 안사인 큰심방 추모굿

[제주당굿 기록](17)故 안사인 큰심방 추모굿
미신타파 시절 스스로 심방 자부… 제주의 '큰심방'
  • 입력 : 2013. 10.17(목)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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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사인 추모굿 중 초감제에서 당주연맞이 제차를 집전 중인 이용옥 큰심방.

초대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장… 굿보존 앞장
제주섬 큰심방들 한자리 모여 고인 추모굿 집전


칠머리당영등굿이 세계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초석을 다졌던 제주의 큰심방인 고(故) 안사인씨를 추모하는 추모굿과 세미나가 최근 열렸다.

1928년 제주시 용담동에서 태어난 안사인 큰심방은 1946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심방이 되어 굿을 하기 시작했다. 무구 멩두는 신칼, 산판, 요령을 일컫는데 심방들은 이를 '조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4년 후인 1950년에 신굿을 시작해 정식 심방인 하신충(제주도 시방의 계급 중 맨 아래)이 되어 제주시 용담2동의 본향당인 '고스락당'의 매인신방이 됐다. 이후 목소리가 좋고 춤이 고와 사방으로 명성을 쌓았고, 36살이 되던 해에 또다시 신굿을 해 중신충이 됐고, 49살에 심방의 최고위인 상신충에 올랐다.

1980년에 안사인 큰심방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기능보유자로 지정됐고, 다음해에 제주칠머리당보존회를 조직, 회장이 되어 소멸 위기에 놓인 당굿을 계승·보존하는데 노력하다가 63살에 위암으로 별세했다.

안사인 큰심방과 함께 수십년간 제주굿을 연구했던 현용준 전 제주대교수는 "고 안사인 큰심방은 심방이 천시되고 굿이 미신타파의 대상이 되던 환경에서 스스로 심방임을 자부하고, 제주굿을 지키고 알리고 가르친 제주의 대표적 심방"이라고 평했다.

지난달 28일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회장 김윤수) 전수관에서 열린 추모굿에서는 이용옥 큰심방이 매인심방을 맡아 진행했고, 김윤수 회장과 김연희·신순덕·이용순·김영철·고순안·이용옥 심방 등이 안사인 큰심방을 위한 굿을 집전했다.

안사인의 추모굿은 초감제와 당주연맞이를 시작으로 방광·추물공연, 차사본풀이, 나까시리놀림·지장본풀이·군병지사귐·질침·당주질침·액막이·공시풀이·당주메어듬·공시갈림 등의 제차로 진행됐다.

초감제는 신을 제청으로 청하는 의례이고, 당주연맞이는 삼시왕을 맞이하는 의례이다. 이번 추모굿에서 이 둘을 얼러서 진행했는데 본래 따로 하는 것이지만, 시간 제약이 있어서 이와 같이 했는데 초감제를 하면서 삼시왕에 대한 의례를 겸해서 하는 식이다. 방광·추물공연·차사본불이·나까시리놀림 등은 제청에 모여든 신들을 대우하는 제차이다. 질침은 무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를 비는 순서로 삼하늘 노카단풍 지지멩왕 아기씨를 당주로 모셔들이는 질을 치는 제차이다.

김윤수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장(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기능보유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칠머리당영등굿이 있게끔 선각자로 온 정열을 바치시다 돌아가신 안사인 선생님의 공덕과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추모굿판 열었다"며 "제주굿에서 사람이 죽으면 저승을 가는데 곱게 인도시켜주고자 귀양풀이를 합니다. 하지만 심방이 이승을 떠나면 삼시왕의 저승판결을 받는 법으로서 옛 선생님 앞으로 지부쳐 줍쎈허영 삼시왕 질을 친다"고 설명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원들이 故 안사인 큰심방 추모굿을 진행하고 있다.

故 안사인 큰심방의 생애 "10년 만에 제주도 굿의 모든 문서 꿰뚫어"

고(故) 안사인 큰심방 추모굿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문화원형체험관에서 안사인 추모 세미나 준비위원회가 주관한 '제주 큰심방 안사인 추모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제주굿을 연구하는 도내·외 학자와 연구자들이 모여 안사인 큰심방의 생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안사인 큰심방의 집안은 오랜 내력을 지닌 심방 집안은 아니지만 증조부가 19대를 이어온 심방집 딸과 결혼을 하면서 무업과 관련을 맺게 됐다. 조부때부터 그 어머니의 일을 물려받아 본격적인 무업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안사인 큰심방 대에는 안 심방 혼자 무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대가 끊기게 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들을 따라 굿판에서 굿을 보고 배우며 자랐고, 15세 무렵부터 무업에 종사하기 시작해 19세에는 아버지의 멩두를 물려받아 본격적인 심방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49세에 삼신질을 바로잡는 신굿을 하여 상신충의 칭호를 얻으면서 제주를 대표하는 심방으로 거듭났다. 모든 굿에 능하였으며 특히 목소리가 좋고 춤을 곱게 잘 추었다고 한다. 눈물 한 방울 없이 '영계울림'을 그럴듯하게 해내 지금도 심방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초감제의 처음에 말미를 하지 않고 바로 베포도업침으로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현용준 전 제주대교수의 '제주도무속자료사전'에 그의 문서가 대폭 수록됐다. 수록된 문서의 조사기간은 대체로 1959~1967년 사이다. 이 기간은 안사인 심방이 30대 시절로, 본격적으로 무업에 뛰어든 지 불과 10년 만에 그는 제주도 굿의 모든 문서를 다 꿰뚫고 있었다는 말이다. 안 심방과 현 교수의 노력으로 제주도 굿이 널리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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