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폐인 홀로서기 도운 '지원주택'… "제주만의 모델을"

[기획]자폐인 홀로서기 도운 '지원주택'… "제주만의 모델을"
[발달장애, 그 보통의 삶] ⑥ 자립의 조건
보건복지부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 계기
제주시 지역 발달장애인 등에 지원주택 공급 시작
'주거+서비스' 효과… 주택 확보·사업 유지는 과제
  • 입력 : 2022. 09.14(수) 14:21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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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통합돌봄 장애인 지원주택' 입주자로 선정돼 자립생활을 시작한 김대권 씨. 김 씨는 자폐증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한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한라일보] "좋으면서도 꿈만 같았어요." 자폐증 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대권(31) 씨가 말했다. 김 씨는 2020년 12월 자신만의 공간을 얻어 홀로서기했다.

어릴 때 보육원에 맡겨진 그는 시설 생활이 길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에서 자립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시설 밖으로 나서는 일은 막막했다. 비용 부담에 집을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랬던 김 씨가 자립 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2년째다. '지역사회 통합돌봄 장애인 지원주택' 입주자로 선정된 게 계기가 됐다. 안정적으로 살 곳이 생기니 자립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쯤 자립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던 그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고 말했다.

주거가 안정되니 삶도 새로워졌다. 시설 생활이 길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일은 혼자서 해 낸다. 일터인 도내 한 직업재활시설로 출퇴근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보내는 데도 큰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금전 관리도 시작했다. 매달 들어오는 급여 관리는 공공후견인의 도움을 받지만 생활비 통장은 그가 맡는다. 김 씨는 "장을 보는 등 여러 가지 생활비가 나가는 통장은 제가 관리하고 있다"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도움을 받으며 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가 빠르게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은 의사소통에 큰 무리가 없기도 했지만 '행복플래너'의 역할이 컸다.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의 하나로 운영되는 행복플래너는 김 씨가 새로운 공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임주혜 제주시장애인지역사회통합돌봄지원센터 운영지원팀장은 "시설 거주 기간이 길었던 대권씨의 경우엔 혼자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며 "자립 초기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플래너가 방문해 집에서 직장까지 스스로 출퇴근하는 것부터 병원 이용까지 익숙해지게 하고 자립생활 정착금 신청 등 행정적인 부분도 지원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지역사회 통합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제주시장애인지역사회통합돌봄지원센터. 김지은기자

|주거·서비스 결합 '지원주택'… "자립 위해선 안정적 주거지 필수"

김 씨가 지원 받은 '장애인 지원주택'은 주거와 사회복지서비스가 결합된 주거 형태다. 공공이 확보한 주택을 장기간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사회활동과 가사, 건강, 금전 관리 등을 지원한다. 제주에선 2019년에 처음 시작됐다. 제주시가 같은 해 8월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분야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에 선정되면서다. 현재 사업 수행 기관인 제주시장애인지역사회통합돌봄지원센터와 제주시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제주시에 주소를 둔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과 뇌병변장애인을 위한 주거, 생활지원 등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장애인 지원주택은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핵심 사업이기도 하다. 이는 자립을 원하는 발달장애인의 욕구와도 맞물려 있다. 임주혜 팀장은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만이 아니라 재가 장애인 중에서도 여관에서 지내는 경우가 있다"며 "생각보다 혼자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고 주거지가 안정돼야 다른 생활이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해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2019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 정책대상자 실태조사'에도 담겨 있다. 제주시의 의뢰를 받아 조사를 수행한 제주국제대 산학협력단 연구진은 제주시 지역 발달장애인(지적, 자폐성)과 뇌병변장애인의 72명을 설문조사한 내용 등을 토대로 이같은 제언을 내놨다.

연구진은 조사 요약 보고서에서 "장애인은 거주지의 잦은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주거지는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며 "자립생활은 거주지를 토대로 이뤄지므로 새로운 거주지에서의 적응이 최우선적으로 지원되기 위해선 지역사회에서 거주 장소를 마련하고 안정적인 주거지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김 씨의 사례도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자립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업이 시작된 2019년부터 현재까지 김 씨처럼 장애인 지원주택을 지원 받은 인원은 모두 19명이다. 이 중 뇌병변장애인이 3명이고 나머지는 발달장애인(지적 장애 14명, 자폐성 장애 2명)이다. 이들은 제주시가 제주도개발공사로부터 확보한 매입임대주택에 보증금 부담 없이 살고 있다. 1인 당 평균 12~13만원의 월세를 내며 길게는 20년(2년 단위 계약)까지 거주할 수 있어 안정적인 자립 생활이 가능하다.

사진은 2022 제주지방선거 장애인연대가 지난 6월 27일 제주도지사 인수위를 찾아 간담회를 갖고 정책 제안서를 전달한 모습. '자립생활 지원 및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통합돌봄) 확대'는 이 제안서에 담긴 12대 정책 제안 중 하나였다. 한라일보 DB

|주택 확보 안정성 더하고 '제주형' 서비스 고민해야

제주에서도 '장애인 지원주택' 사업이 시작돼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있지만 한계는 있다. 우선 주택 확보가 쉽지 않다. 그 명분도 불분명하다. 지난 2020년 말에 제정된 '제주도 노인 및 장애인 지역사회통합돌봄 지원에 관한 조례'에는 도지사가 주거 공급 등 인프라 구축에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주택 확보 방안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현재 지원주택으로 공급된 주택 16호(원룸 13곳, 투룸 3곳) 모두 제주도개발공사로부터 공동생활가정용으로 공급 받은 물량이다. 별도의 주거 지원 조례를 만들어 장애인을 포함한 취약계층의 주거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장애인 지원주택을 포함한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제주형'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과제로 주어진다. 특히 보건복지부의 통합돌봄 선도사업이 올해 말로 끝나게 되면서 이를 어떻게 이어갈지 결정하는 일이 시급해 졌다. 제주시가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시범사업' 공모에 선정되며 올해 새로운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 사업의 경우 정책 대상이 제주시 지역 거주시설에 입소해 있거나 입소 대기 중인 장애인에 맞춰져 있어 재가 장애인은 소외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기존 장애인 분야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도 제주시에 주소지를 둔 발달장애인과 뇌병변장애인만 대상에 포함돼 있어 장기적으로는 그 범위를 제주도 단위로 넓히는 통합돌봄을 고민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시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지자체 사업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아직 사업 범위와 내용은 확정하지 못했다. 제주시 관계자는 "내년부터 자체 예산 사업으로 전환해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진행할 예정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만드는 단계"라며 "'제주형'으로 진행할 수 있는 특화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다른 장애 유형보다 개개인의 특성과 욕구가 다양한 만큼 개인별 주거지원 계획을 세우는 등 제주만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서비스 체계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선도사업이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다른 지역에 전파해야 하는데 오히려 다른 지역을 따라가기 급급한 상황"이라며 "중증 발달장애인도 자립할 수 있도록 제주도 차원에서 활동지원서비스 지원을 강화하고 집단 서비스가 아닌 개개인의 욕구를 사정해 지원계획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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