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독 아닌 낭독… 제주문학의 구술적 자산 주목해야"

"묵독 아닌 낭독… 제주문학의 구술적 자산 주목해야"
제2회 유네스코·겨레말큰사전 국제학술포럼 26일 '제주어 …' 특별세션
'제주어로 문학하기' 강덕환 시인 "제주어 구사하면 무명이지만 모두 시인"
고명철 평론가 "제주 구술문화적 전통과 근대문학 문자성 '회통' 작업 절실"
  • 입력 : 2021. 11.26(금) 14:38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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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환 시인이 26일 오전 '제주어로 문학하기'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제주어로 쓴 시와 소설이 글이 아닌 말로 전해졌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가 공동 주최하고 통일부·외교부 후원, 유네스코 협력으로 서울에서 진행된 제2회 유네스코·겨레말큰사전 국제학술포럼을 통해서다.

이달 25~26일 개최되는 이번 포럼은 인류 문화유산인 토착어의 채집과 기록을 넘어 작품의 창작과 향유를 통해 지속가능한 토착어의 보존과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됐다. 둘째 날인 26일 오전에는 특별세션으로 '제주어와 함경도어 그리고 겨레말큰사전'이 마련돼 제주어로 문학을 하는 강덕환 시인(제주작가회의 회장), 제주 출신 문학평론가인 고명철 광운대 교수의 발표가 잇따랐다.

홍경희 시인이 강덕환 시인의 '여름날'을 낭송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겨레말TV를 통해 실시간 중계된 이날 포럼에서 강덕환 시인은 '제주어로 문학하기' 발표에서 "제주어는 섬이라는 독특한 환경을 자양분으로 말(언어)이 사람들의 삶 속에 새겨져 왔다"며 조선시대 200년간의 출륙금지령, 제주4·3 당시 수난 상황에서 "모르쿠다"가 불러온 비극, 중앙집권 표준어 정책의 문제점을 돌아봤다. 강 시인은 "작가(문학인)는 그 지역의 언어로 그 지역민의 정서를 표현하는 숙명적 존재다. 이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면서 "제주어를 쓸 줄 알면 무명이지만 시인"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강덕환 시인과 제주 토박이 시인 등이 참여해 강 시인의 '우화', '조밭 밟기', '오몽', '여름날', '한잔해 불게', '게미융헌 싀상'을 제주에서 직접 낭송하는 영상이 공유되며 제주어 문학의 가치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고명철 평론가가 '제주어의 문학적 상상력과 겨레말큰사전-구술성과 문자성의 가역반응, 구미중심의 (탈)근대를 넘어'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고명철 평론가는 '제주어의 문학적 상상력과 겨레말큰사전-구술성과 문자성의 가역반응, 구미중심의 (탈)근대를 넘어'란 주제 발표에서 "지역주의에 갇히지 않으면서 제주어의 독특한 미감을 시와 소설에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토착어 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묵독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 읽으며 제주어의 구술성과 시 텍스트의 문자성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탐색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그가 표준어로 치환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 힘쓸 게 아니라 그 소리에 집중해보라며 이날 직접 낭독한 제주어 문학은 강덕환 시인의 '관(棺)도 없이 묻은 사연', 김수열 시인의 '어머니의 전화', 오경훈 소설가의 '당신의 작은 촛불', 한림화 소설가의 '그 허벅을 게무로사' 등 4편이었다. 고 평론가는 이들 작품을 낭독하며 "한국문학이 놓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휘감는 문학의 영혼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두 편의 시에서는 시적 화자로 하여금 유년 시절에 겪은 4·3의 화마를 떠올리도록 하는 ㄹ, ㅁ, ㄴ, ㅇ의 음가에 주목했다. 4·3을 다룬 오경훈의 소설은 등장인물의 대화 속 서북방언 계열과 제주어 대사가 4·3공간에서 서로 적대적 관계를 보여준다고 했다. 반면 고 평론가는 이러한 역사적 비극을 방관하고 심지어 더 큰 참상을 불러일으킨 국가권력의 존재는 지문에서 표준어로 표상되고 있는 점을 짚었다. 한림화의 소설은 "기억의 투쟁을 구술 서사의 방식으로써 실행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게무로사'란 제주어에 응축된 제주 여성의 주체적 의지, 생의 위엄을 살폈다.

고 평론가는 "제주문학이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자기활로를 지니면서 왕성한 생명력으로 제주의 삶 속에 존재하는 구술성, 이 구술성을 내용형식으로 삼고 있는 무속신화 등 구술문화적 전통, 근대문학이 벼려온 문자성을 '회통(會通)'하는 작업이 절실하다"며 "그런데 그동안 '근대'문학주의가 내면화되면서 제주문학의 구술적 자산과 토양을 전근대적인 것과 가르는 큰 잘못을 범한 가운데 이것이 지닌 구연적 상상력이 문자적 상상력의 위력에 압도되면서 제주문학은 '회통의 근대'를 향한 출구가 봉쇄된 불운을 겪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제주문학은 구미중심의 (탈)근대의 문학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국민국가의 여러 지역 문학 중 하나로 자족해 오지 않았는지 혹독한 자기비판을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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