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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와 문학] (32)한림화 소설 '불턱'
"갯가 불턱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12.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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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턱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 해녀들. 소설 '불턱'은 순덱이 어멍으로 통칭되는 이 땅의 수많은 이름없는 여자들의 수난사를 그려냈다./사진=한라일보DB

잠수집단의 의회이자 학교
역사의 마디마디 불턱 배경
숱한 순덱이 어멍들의 생애

그것들엔 저마다 이름이 달렸다. 연대불턱, 새배불턱, 돗개불턱, 신동코지불턱, 모진다리불턱. 돌담으로 둘러져있거나 시멘트를 덧바른 곳, 바위나 궤(동굴) 형태도 있다. 2013년 제주연구원이 해녀문화유산으로 제주지역 불턱을 조사했더니 보존상태가 양호한 곳이 34개였고 8개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었다.

갯가 바람막이 되는 곳에 들어선 불턱은 물질하러 바닷가로 향할 때 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는 장소다. 하지만 불턱은 해녀들의 쉼터 그 이상이다.

"이즈음에 이르러 제주 삼읍에 놓인 불턱마다 떠들썩하다네. 아낙네들에게 그지없이 부담스러운 성을 수비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들 생각들을 주고받느라고 말일세."

소설가 한림화의 단편 '불턱'. 소설집 '꽃 한송이 숨겨놓고'(1993)에 실린 '불턱'은 1601년 여름에서 시작된다. 작가가 잠수(潛嫂)로 칭한 가는꽃(細花) 마을 해녀들이 주인공이다. 민가의 튼튼한 여자를 골라 성(城) 어귀에 파수를 보게하던 군역인 여정(女丁)을 통해 물질하랴, 밭일하랴, 집안살림하랴 짬내기도 버거운 그들의 이중삼중 고통을 담았다.

작가는 불턱을 두고 '잠수집단의 의회'이자 '학교'로 불렀다. 불턱에서는 해녀 개인의 신상은 물론 마을 전체의 삶이 야기하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토론과 상담이 이루어진다. 어린 사람들은 불턱에서 물질과 인생을 배운다.

제주에서 '역모 사건'이 있던 그 해를 지나 1901년 5월 4일에 이르면 불턱의 화제는 신축년 난으로 옮겨간다. 마을마다 형편 닿는 대로 식량과 피륙을 거둬 '민꾼'(民軍)을 지원하고 있다는 말에서 수탈에 지친 섬 백성들의 고난이 읽힌다. 1932년 2월 12일 불턱은 기어이 들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일제강점기 해녀 항일운동의 공간이 된다. "우리 잠수들이 권익을 도모해보자고 결성한 조합을 그들이 한입에 집어먹고 우릴 억눌렀다는 사실은 누누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걸세. 일어서긴 일어섰는데 그들이 짓밟는 힘 또한 너무 세군." 1948년 4월 30일의 불턱은 전에 없이 '색깔' 때문에 입씨름이 벌어진다. 말 한마디에 살고 죽는 판이니, 무슨 사람 세상이 이러나 싶다.

소설 속 화자는 역사의 마디마디 '순덱이 어멍'에게 편지글을 띄운다. 이 땅의 생명을 피워낸 여자들 모두 순덱이 어멍 아니었나. 바르게 살자고, 사람답게 살자고 애썼던 웃어른들이 앉았던 불턱을 그 많은 순덱이 어멍들이 세대를 이으며 물려받았다.

소설은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일로 지정한 1987년 3월 8일 불턱에서 끝이 난다. 감격에 겨운 화자는 순덱이 어멍에게 글을 쓴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육지가 섬을, 남자가 여자를 짓밟아온 역사를 얘기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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