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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와 문학] (30) 고영기 시 '해녀의 겨울'
"동짓달 물살 헤치며 나는 저 새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11.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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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물질하는 해녀들. 고영기 시인은 시집 '해녀의 겨울'에서 개발의 격류가 몰아치는 현실 속에 제주 자연과 삶이 던져준 '아득하고 눈부신 상징들'을 붙잡고 있다.

제주가 안겨준 눈부신 상징
개발 격류로 침탈되는 현실
세계로 통하는 바다가 위안


"그동안 나는 세계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지만, 제주도에는 피눈물나는 역사의 갈피를 뚫고 나오는 원형의 은유들이 번쩍이면서 소리치기도 하고 서로 충돌하면서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번개, 천둥, 말젖빛 바람, 떨기진 별자리들은 개발의 격류로 침탈되고 사라져 간다. 어찌 제주도가 제주도만이랴."

1995년 가을에 나온 고영기 시인(1935~2006)의 첫 시집 '해녀의 겨울'은 이런 문장으로 닫힌다. 끄트머리에 덧붙인 '시집을 내면서'의 한 대목이다. 그 해,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본격적으로 지방자치가 시작되었다. 서울이 아닌 지방을 소리높여 말했던 시대였으나 시인의 눈에는 되레 제주섬의 본류가 흔들려 보였다. 역설적이다.

'해녀의 겨울'에 담긴 40편은 해녀가 자맥질하는 겨울 바다로 열린 뒤 굿판을 지나 바람 따라 땅끝에 이르고 다시 폭풍치는 바다로 향한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살아오는 동안 자신을 둘러싼 온갖 자연 환경과 삶이 아득하고 눈부신 상징들이었다는 시인은 물질하는 생애를 좇으며 제주휘파람새가 되어 운다.

'동짓달 물살 곤두박질쳐서/ 이승에는 못 다할 빗질로/ 헝클어진 머리칼 고르며 보는/ 겨울비 속의 바람까마귀 떼.// 가슴으로 안으면/ 발끝으로 빠지는/ 바람은 불꽃으로/ 알몸뚱이를 채워 흔들고// 한 길 두 길 저어 오르는/ 한숨의 산은 솟아서/ 더러는 비가 되고/ 진눈깨비가 되고/ 이 겨울 또 칼날 같은/ 눈발로 내리고.'('해녀의 겨울' 중에서)

한겨울 차디찬 물 속에 몸을 담가야 하는 해녀의 생애를 어찌 쉬이 이해한다고 할까. '둥근 태왁의 꿈'이 매일 아침 파도와 함께 눈을 뜨지만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물질의 운명을 거스를 순 없다.

바다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은 또 있다. '바다는 비어서 흔들리고'에서 시인은 '수평선을 넘어간 우리의/ 삐걱이는 배들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 '하늘 비탈진 물목에서/ 밧줄을 걷어올리던 그들은/ 기를 올리고 북을 치던 그들은/ 심줄 굵은 팔뚝으로/ 일하고 잃고 떠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시인은 산을 보면 섬이지만 바다를 보면 세계로 통하는 곳이 제주라고 했다. 제주 이전에 존재했던 '탐라'의 발자국이 그러했을까. 날개달린 아기장수들이 스러졌던 제주에서 시인은 제주휘파람새에 마음을 기댄다. 그 새는 바닷길이 막혀도 파도가 오는 길을 따라 날 수 있다. 시집 곳곳에 날개를 펴고 있는 갖가지 새들은 고통 속에서도 비상한다. '새는 다시 눈을 뜬다./ 싸락눈 치는 등성이에서/ 여름날 흙풀빛 나래를 털고/ 상처 투성이의 물결 맺힌/ 암벽 위로 날아오른다.'('뇌조(雷鳥)') '개발의 격류로 침탈'되는 제주 땅의 희망이 있다면 그 새들이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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