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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22)중화와 소중화(1)
"예악·복식 문화적으로 우월하고 천하의 가운데 있어 중화"
유재선 기자 sun@ihalla.com
입력 : 2019. 10.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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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 중심주의 차별적 개념
통일제국 한의 자부심 담겨
중화 외는 오랑캐들로 취급
한 책봉체제 외교정책 발전
권력지배층 상호 이익 부합
소중화는 고려 일컫던 이름


'중화中華'는 원래 지명이자 국명이며, 한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중'은 중원, 즉 세상의 가운데 너른 땅이란 뜻인데, 지금의 하남성 일대인 하락河洛(황하와 낙수洛水, 낙양洛陽의 뜻) 지역을 뜻한다. '화'는 화산華山 서쪽에서 일어난 화서씨華胥氏('열자列子·황제'에 따르면, 화서가 복희伏羲와 여와女왜를 낳았다고 한다)에서 기인한 말이니 이른바 염황자손炎皇子孫인 한족의 자칭인 셈이다. 물론 복희나 여와는 모두 전설상의 인물들로 세상을 창조한 인물로 상정되어 추앙받고 있으니 후세에 지어낸 말이 분명하다.

조선은 한당 시절 중국의 군읍(郡邑)이었으며, 명대에 속국이었다는 망언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 민족, 지역을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고대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굳이 '중'을 쓴 것은 다른 뜻도 있겠지만 자신들이 천하의 중심에 있다는 자대自大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서한西漢 문인인 양웅揚雄은 "천지 가운데 있어 중국이라 한다(中於天地者爲中國)."고 했다. '중화'는 서한 시대부터 사용되었는데, 이는 통일제국 한漢의 자부심을 표현한 것일 터이다. 그 이전에는 화하華夏라는 말을 선호했다.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정공定公10년'에 보면, "중국은 예의가 위대한지라 하夏라고 칭하며, 복장服章(계급과 신분을 표시하는 복식)이 아름다운 지라 화華라고 말한다." 말인 즉 예악이나 복식 등 문화적으로 우월한 나라여서 '화하'라고 칭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천하의 가운데 있다는 일종의 자기중심주의가 합쳐지면서 '중화'라는 말이 태어났다. 이렇듯 '중화'라는 말은 애초부터 문화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중원 또는 한족 중심주의가 짙게 배어 있다. 처음부터 차별적인 개념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화' 외의 것은 무엇인가?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대로 사이四夷, 즉 사방의 오랑캐들이다.

1602년 명나라 지도.

중국인들은 특히 한당漢唐, 즉 한나라와 당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한과 당이 통일제국으로 가장 강성한 조대였고, 무엇보다 문화대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스스로 한인漢人이라 칭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한인의 문자이니 한자이고, 한인의 문장이니 한문이며, 한인의 언어이니 한어漢語이다. 지금도 외국에 사는 한인들은 자신들이 모여 사는 일명 차이나타운을 당인가唐人街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대는 오랜 분열과 전쟁에서 벗어나 간만에 태평성대를 누린 시대이기도 하다. 비록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리(안사安史의 난, 755-763년)로 쇠퇴기에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조(618-907년)는 여전히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막강한 대국이었다. 한편 신라는 660년 백제,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676년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삼국을 통일하여 한동안 평안을 구가했고, 옛 고구려 땅에는 발해가 등장하여 중국인들이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칭할 정도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한반도의 남북조 시대를 열었다. 또한 일본은 나라奈良 시대(710~784년)로 접어들었다. 네 나라는 적어도 200년 넘게 서로 큰 다툼 없이 평화롭게 공존했다. 평화 공존 속에서 상호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당대 화가 염립본(閻立本)의 직공도(職貢圖, 조공도) 일부.

문화는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기원전 770년, 주나라가 호경에서 낙읍으로 옮긴 후부터 진나라가 221년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500여년의 시대를 우리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른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자신의 책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기원전 5세기 전후의 그 시대를 일컬어 인류문명의 근간을 만들어낸 추축시대(樞軸時代, axial age)라고 불렀다. 실제로 춘추전국시대 이른바 제자백가의 사상은 중국 봉건국가의 정치이데올로기가 된 유가와 율령제의 원인遠因이 된 법가의 학문을 포함하여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과 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사고를 공유했다. 여기에 기원전 1세기 무렵 인도에서 넘어온 불교가 당대에 이르러 중국화하여 선종禪宗으로 거듭나면서 불교라는 새로운 문화가 첨가되었다. 이러한 오래된 문화 전통은 한당은 물론이고 송대를 거쳐 명대와 청대까지 그대로 이어졌으며, 한반도 남북조와 일본은 물론이고 서남쪽 베트남까지 전파되고 수용되어 거대한 문화권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해동성국, 발해국(渤海國).

일본의 중국사학자인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는 '일본의 고대사 인식'이란 책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반도, 일본, 베트남을 포함한 공간을 동아시아세계로 규정하고, 그 특징으로 한자와 유교, 불교, 율령 네 가지를 거론했다. 말인 즉 중국에서 비롯된 한자와 유교, 인도에서 들어와 중국에 전파된 불교(대승불교)와 수, 당대에 정비된 율령제가 주변 여러 나라에 전파되면서 거대한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했다는 뜻이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들 가운데 북방의 유목민족과 달리 농경민족으로 한자를 공유했던 나라들은 왕권 수호를 위해 책봉체제를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국가체제 유지에 도움을 주는 유교(충효를 강조하는)와 불교(호국불교), 그리고 율령제도를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조선시대 오경원(吳慶元)이 편찬한 '소화외사(小華外史)'.

책봉체제는 천자가 제후들에게 분봉하면 제후들은 천하의 명령에 복종하고 조공하며 주실周室의 안전을 책임지는 분봉제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나라와 나라사이의 외교정책으로 발전한 것은 한나라 시절이다. 조공과 책봉은 중국의 대외정책으로 주변국과의 외교형식일 뿐 내정간섭이나 경제침탈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를 통해 문화교류가 활성화되기도 했다. 예컨대 신라와 당나라의 조공사와 책봉사는 단순히 관리들 간의 왕래가 아니라 조선시대 명나라에게 사신을 보낸 '조천朝天'이나 청나라에게 파견한 '연행燕行'이 사신의 왕래이자 문화의 왕래였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려가 명의 연호인 홍무洪武를 사용한 것은 명 태조 주원장에게 고려의 사절단이 조공하고, 이에 주원장이 고려왕을 책봉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명이 고려를 자신의 속국으로 간주하여 경제수탈을 자행하거나 정치탄압이나 간섭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러한 책봉체제가 한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일관되게 이행된 것은 아니다. 때로 침략과 수탈이 자행되고 심지어 책봉을 빌미로 부당한 요구가 있었던 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책봉체제는 권력지배층의 상호 수요와 이익에 부합하는 탁월한 체제였음이 분명하다.

청대 조선의 연행사절단 그림.

이른바 '소중화小中華'는 이런 배경 하에서 태어났다. '소중화'란 말은 고려 문종시기 송나라 사람들이 고려 사신들이 묵던 관사를 '소중화관'이라고 부른 것에서 기인한다. 이 말은 송대에 고려를 소중화라고 불렀다는 뜻이다. 실제로 1080년 호부상서 유홍柳洪, 박인량朴寅亮, 김근金覲(김부식의 부친) 등이 송나라에서 약재를 보내준 데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갔을 때, 송나라 사람들이 박인량과 김근이 저작한 척독尺牘이나 표문表文, 제영題詠(시가) 등을 수록하여 '소화집小華集'을 출간했는데, 여기에 나오는 '소화'가 바로 소중화의 뜻이다. 그러다가 고려말 주자학이 전래되고 신흥사대부들이 조선을 건국하여 성리학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면서 '소중화'에 정치, 문화적 함의가 짙어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조선은 철저하게 중국을 중심이자 대국으로 섬기고 자신을 '동방의 예의지국', 즉 '소중화'로 여기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일본이나 베트남과 달리 조선이 특히 '중화'를 죽도록 신봉하여 '소중화'를 자처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

<심규호·제주국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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