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본문으로 바로가기

실시간뉴스

기획특집
강준 장편 연재/갈바람 광시곡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28)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9. 09.05. 20: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 구글

강준 작/고재만 그림

10-4. 제주에 부는 갈바람




한족들이 소수민족을 업신 여기면서도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중국인의 영역 안에 편입하는 의도는 따로 있다. 55개의 소수민족이 독립을 요구하게 되면 중국은 정체성의 뿌리마저 흔들리게 된다.



"그럼, 선이자 떼고 즉석에서 대출해주는 거로구나?"

"역시 촉이 빠르시네요. 매일 매출액의 70%는 회사 운영비이고 30%는 이사들이 분배하죠."

매일 현금으로 이익배당을 받는다는 말에 용찬은 놀랐다.

"그래? 금산인 엄청 부자겠구나?"

"그게 모두 형 돈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랴오닝과 합작 투자했는걸요."

용찬은 돈이 어떻게 회전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카지노에 온 사람들은 일반 유커(遊客)와는 질이 다른 믿을 수 있는 고급 손님들이다. 그들이 가지고 나올 수 있는 현금에는 제한이 있으니 제주에서 돈을 빌려 게임하고 중국에서 랴오닝 회사로 송금하는 전형적인 환치기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대룡은 랴오닝 그룹의 자 회사죠. 그래서 업무 때문에 형은 일 년에 반 이상은 중국에 살아요."

"헌데 대룡관광 말이야. 그것도 형이 오너야?"

삽화=고재만 화백



은산은 잠시 용찬의 얼굴을 살피더니, 곧 미소를 지었다.

"리화 이름으로 되어 있긴 한데, 오너는 왕금산이죠. 헌데 무슨 문제 있어요?"

오랜만에 듣는 리화라는 이름이 정겹게 들렸다.

"아니. 궁금해서. 그런데 다른 일도 많을 텐데 자네는 고작 식당이야?"

그 말에 은산인 어이없다는 듯 소리 내며 웃었다.

"이 대룡반점 시시하게 보지 말아요. 하루 매출액 알면 깜짝 놀랄걸요?"

용찬은 은산의 웃음의 의미를 분석했다. 현금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속성상 여긴 대룡그룹의 사금고이고 은선이가 자산 관리 책임자란 말이구나.

"아까 언쟁하던 그 청년도 화교?"

"조선족은 순수 화교는 못되죠. 조선족들이 이 바닥을 흐려놓고 있어요. 아까 나와 이야기 하던 애가 조선족 여행사 가이드에요. 대부분 가이드가 사장이죠. 그 녀석이 뻔뻔스럽게도 중국 관광객들 보낼 테니 아침 식사 좀 해달라는 거예요."

"장사시켜 준다는데 왜 화를 냈어?"

"들어보세요. 1천만 원 선금으로 줄 테니 6천 원짜리를 4천 원으로 깎자는 거예요. 나쁜 자식들. 그놈들 호텔하고도 그런 식으로 계약을 해서 식사라고는 밥에다 두부국, 콩나물, 깍두기가 전부에요. 관광 사업을 그런 식으로 하면 다른 여행사들이 욕먹죠."



한족이 소수민족 사람들을 업신여긴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역사까지도 중국 변방의 역사로 편입했다. 또한, 탐원공정을 통해서는 그들이 자랑하는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특이한 동이족의 홍산문명, 고조선 건국의 터전에서 발견된 요하문명까지도 중국의 역사 문화로 둔갑시켰다.

민족시인 윤동주도 '중국인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생가 앞에 크게 써 놓았다.

한족이 소수민족을 업신여기면서도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여 중국인의 영역 안에 편입하는 의도는 따로 있다. 개방화, 세계화 되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55개의 소수민족이 독립을 요구하게 되면 중국은 정체성의 뿌리마저 흔들리기 때문이다.

티베트, 위구르 족은 최근까지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피를 흘리고 있지만 중국은 이를 강력하게 저지 제압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인구는 중국 전체의 10%도 안 되지만,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룬 근간은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둘러 소수민족이 중국인이라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공정을 시행하고 이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아버님은 건강하시고?"

"평생 일만 하시다가 그만두니 섭섭하신가 봐요. 대룡그룹 고문이지만, 아버지가 하실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바쁠 때 요청하면 가끔 와서 주방일 봐 주시는 게 전부 셔요."

"아버지 만나보고 싶은데 연락처 있나?"

"워낙 험한 세상이 돼서 아버지 전화번호는 가르쳐 드릴 수 없어요. 요즘 조선족 놈들이 독이 올라 협박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전화번호를 바꾼 이후엔 가족 말고는 비밀이에요. 명함 아버지한테 전해 드릴게요."



"나 오빠 무척 좋아했어요. 오빠 소식 들으려고 임신한 몸으로 할머니와 어머니도 만났고요. 그때, 애 아빠가 오빠인 줄 알고 놀라더라구요. 중국 애 며느리 될까 봐 두려웠겠죠?"



용찬은 왕리화가 보고 싶었다. 어떤 모습일까?

대룡관광여행사는 대룡반점과 같은 구역 건물 3층에 있었다. 사무실 직원들은 한국인도 많았지만, 대부분 중국어로 통화하고 있었다.

용찬은 직원에게 명함을 내밀며 면담 신청을 했다. 임원실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곳으로 들어갔던 직원이 곧바로 나오더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왕리화는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었다.

문을 열고 안을 살피는데 왕리화가 선 채로 용찬이 들어서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첫눈에 못 알아볼 정도로 리화는 품위를 겸비한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말없이 용찬을 찬찬히 응시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오빠, 죄송해요. 이리 앉으세요."

그녀는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찾아내어 눈물을 닦았다.

용찬은 술이 오르는 듯 잠시 휘청하더니 몸을 가누며 의자에 앉았다.

"고향에서 근무하시니 좋으시겠어요? 언제 오셨어요?"

"얼마 안 됐어. 고향이지만 많이 변해서 아직도 낯설어."

리화는 말을 들으면서도 용찬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다가 용찬과 시선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오빠도 많이 변했네요."

"우리 얼굴 본 지 한 십 년 되었지?"

"10년이 뭐에요? 밀레니엄 전 해였는데."

직원이 들어와 커피를 탁자에 놓고 나갈 때까지 대화가 잠시 끊겼다. 리화는 핸드백에서 화장품을 꺼내 얼굴을 고치면서도 용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힐끔거렸다. 용찬이 커피를 들자 그녀도 커피를 들며 말을 이었다.

"그때 오빠가 와주었으면 내 인생도 변했을 거예요."

용찬은 '그때'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리화와 마지막 만난 기억을 곱씹어 봤다.

"아, 밀레니엄? 미안해. 집안에 일이 있어서."

"그게 다 운명이지요. 억지로 되지도 않을."

"지금이 어때서? 좋은 신랑 만나서 이 만큼 살면 됐지. 나를 봐. 이 나이에 윗사람 눈치 보며 쫓겨 다니는 월급쟁이 신세야."

"나 오빠 무척 좋아했어요. 오빠 소식 들으려고 임신한 몸으로 시골집 찾아가서 할머님과 어머님도 만났었죠. 그때, 애 아빠가 오빠인 줄 알고 놀라더라구요. 중국 애 며느리 될까 봐 두려웠겠죠?"

그 말을 듣고서야 당시의 상황이 짐작되었다. 용찬이 해연의 연주회에 간 날, 리화는 종필을 만났다. 감성적인 리화는 밀레니엄 종소리를 들으며 종필과 잠자리를 함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용찬은 다시 그런 상황이 돼도 해연을 만나러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해연과 첫 키스했던 장면이 떠오르자 한편으론 리화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그런 소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리화가 어때서?"

"저 아직도 예뻐 보여요?"

"그럼, 학생 때 보고 처음인데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할 줄 누가 알았나?"

"그럼, 오빠 언니보다 더 예뻐요?"

그녀는 예전의 성격대로 부끄러움도 없이 당돌하게 물었다.

"음, 그건 모르지."

"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언니가 예쁜 모양이죠?"

"아마도 리화 같이 예쁜 사람 만나야겠지?"

리화는 아쉬움인지 안도감인지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는 예쁜 언니 만날 자격 충분해요."

용찬은 취기가 올라 정신이 가물거린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온 목적을 완수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헌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오해하지 말고 사실대로만 말해줘."

"뭔데요?"

"대룡여행사가 전세기를 띄우면서 중국관광객 많이 데려오는 것은 참 좋은데 말이야. 2,30명이 단체로 도망가서 불법체류자를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던데?"

그 말에 리화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취하셨어요?"

"그거 전문 브로커를 두고 짜고 그런 건 아니지?"

리화는 모욕을 참을 수 없다는 듯 태도를 바꾸며 일어섰다.

"권 기자님,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하네요. 죄송하지만 근거 가지고 얘기하셔야죠? 앞으로는 말짱한 정신에 오세요. 실망이에요."

말을 마치자 왕리화는 핸드백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용찬은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이구, 또 요놈의 술이 망령을 불러냈네."



밖에 나오니 거리를 배회하는 찬바람에 몸이 떨렸다. 알콜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시간이라 더 춥다고 생각했다. 어둠이 깔리는 길을 용찬은 휘청이며 걸었다. 해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러다 용찬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그녀의 환영을 내쫓았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화려한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속이 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술이 그리웠다.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강준 장편 연재/갈바람 광시곡 주요기사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9)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8)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7)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6)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5)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4)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3)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2)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1)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 구글

의견 작성 0 / 1000자

댓글쓰기
  •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