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성평등 문화가 깃든다] (3)성 고정관념을 부르는 언어들

[제주에 성평등 문화가 깃든다] (3)성 고정관념을 부르는 언어들
미처 몰랐던 성차별 언어… “화자들의 노력 필요”
  • 입력 : 2019. 07.17(수) 00:00
  • 이소진 기자 sj@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처녀작·내조 등 일상 속 성차별 언어 개선 움직임 일어
"차별의식·언어 개선되지 않는 한 공동체 실현 어려워"


생활 속 성차별적 언어 표현의 '불감증'이 심각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성차별적 언어를 사용하거나, 알면서도 죄의식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문화의 시작은 언어다. 성평등 언어로 순화하려는 자정 노력은 실질적인 성평등 문화 조성의 밑거름이 된다.

▶유모차→유아차… 바꿔 불러 볼까요=성차별적 언어가 문제인 이유는 편견을 유발하고 가치관과 주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과 문화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부산여자대학교 여성연구 제8집에 실린 논문 '언어에서의 성차별적 표현(윤운영 교수)'를 보면 '성차별적 언어'가 정의돼 있다. ▷한 성(性)에게 적용되거나 이들을 특징 지우기에 적당한, 그러나 다른 성에게 적용되거나 특징짓기에는 부적당한 이름·용어·표현들 ▷한 성의 어떤 행위들을 제한하기 위해 사용되는, 그러나 다른 성의 동일한 행위들을 제한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는 이름·용어·표현들 등이다.

아울러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언어 개선 사업이 진행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지난해 6월 '성평등 언어사전'을 발표했다. 시민 608명의 의견과 전문가 자문단의 검토를 통해 총 10건의 '생활 속 성차별 언어'를 선정하고, 개선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직업에서 여(女)자 빼기 ▷여자고등학교→고등학교 ▷처녀OO→첫 OO ▷유모차→유아차 ▷그녀(女)→그 ▷저출산→저출생 ▷미혼(未婚)→비혼(非婚) ▷자궁(子宮)→포궁(胞宮) ▷몰래카메라→불법촬영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디지털 성범죄 등이 선정됐다.

남성이 '기본값'이 되어버린 언어 체계를 중립적인 의미의 단어로, 보다 성평등에 가까운 의미로 바꿔 사용하자는 취지다. 강제성은 없지만 나름의 기준이 되면서 잘못을 인식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도 재단은 지난 2월 성평등 생활사전 설특집으로 ▷친가→아버지본가 ▷장인장모→아버님·어머님 ▷주부→살림꾼 ▷외조·내조→배우자의 지원·도움 ▷집사람·안사람·바깥사람→배우자 ▷미망인→고(故) OOO의 배우자 ▷미혼모→비혼모 등 7가지 성차별 단어 개선을 제안했다.

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남자는 돈, 여자는 얼굴 ▷남자는 일생에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 ▷사내대장부가 부엌에 들어가면 OO가 떨어진다 ▷미운 며느리 제삿날 병난다 ▷사위는 백년지객(백년손님)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 등 바꿔야 될 관용표현도 선정, 발표했다.

▶"평등규범의 가치 부여 노력 필요"=여성가족부의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 정책과제에는 '생활 속 성평등 문화 확산'이 포함됐다. 특히 세부과제에 '성차별 언어 및 표현 개선'이 담겨있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만연한데다, 학교 등의 교육현장에서 성차별적 언어를 사용하는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대중매체와 온라인에서 성별 갈등이 과격하게 표출되고 성차별적 언어와 표현이 심각해 규제와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제주도에서도 제주형 양성평등 정책 '더 제주처럼'을 통해 성불평등 언어개선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생활 속 성불평등 개선사업'이 착수되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 정책과제에도 포함된 만큼 민·관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차별의식와 차별언어가 개선되지 않는 한 공동체의 실현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상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국립국어연구원에 제출한 보고서 '사회적 의사소통 연구:성차별적 언어 표현 사례조사 및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를 통해 "성평등한 언어표현이 대중매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정착되기 위해서는 각급 교육기관의 교재에서 성평등한 표현이 전제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사회 전반에 걸친 평등규범의 가치를 부여하는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복 대구대 교수는 국립국어원에 기고한 '한국어와 한국사회의 혐오, 차별표현'에서 "차별 표현이 가진 부정적 기능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서는 독일이나 일본 등 외국처럼 사용을 규제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의 문제점을 알고 사용을 자제하려는 화자들의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수의 차별 표현에 대한 국어사전의 기술도 체계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앞으로는 ▷여성을 칭하는 성차별적 언어 ▷여성과 남성의 역할과 공간을 규정하는 표현 ▷여성을 공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표현 ▷성을 비하하는 표현 ▷여성 혹은 남성의 성고정관념을 규정하는 표현 등을 개선하고 다양성과 관용의 언어 표현으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다. 이소진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779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