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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15)조정(朝廷)-내정과 외정
청조에 새로 지은 자금성… 군권 견제할 신권의 부재 상징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07.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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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 중심 봉건전제 중국 정치
내·외정 구분 상호 보완·견제
유비와 제갈량 사례 등 모범


조朝는 아침이라는 뜻 이외에 오늘, 시작, 알현 등의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 정치적인 의미가 부연되어 정치, 정권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정廷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따라서 조정은 이른 아침 또는 오늘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모인 곳이란 뜻이다. 약칭하여 '조'라고 하는데, 반대말은 '야野', 즉 정권을 장악하지 못한 곳이다.

제갈량의 '전출사표前出師表'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은 하나의 정체整體이니 상벌賞罰이나 포폄褒貶(좋고 나쁨을 평함)에 다름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만약 간악한 짓을 하여 죄를 지은 자나 충성스럽고 바른 일을 한 자가 있거든 마땅히 각 부서에 맡겨 상벌을 의논하시어 폐하의 공평하고 명명백백한 다스림을 빛나게 하시고, 사사로움에 치우치셔서 안팎(內外)으로 법을 달리하는 일이 없게 하시옵소서." 여기에 나오는 궁중은 황궁으로 황제가 통치하는 내정이고, 부중은 승상이 군정대권軍政大權을 장악하고 있는 승상부로 외정이다.

자금성의 내정 조감도.

위魏, 촉蜀, 오吳 삼국이 정립鼎立하여 천하를 다툴 때 전쟁에 여념이 없던 유비는 국내 정사를 승상 제갈량에게 맡겼다. 심지어 임종할 때도 후사後嗣를 염려하며 국가의 대소사를 제갈량에게 위임했다. 그러니 유비의 아들이자 촉의 마지막 황제인 유선劉禪이 "국가 정무는 제갈량이 책임지니 제사만이 나의 일이로구나(政由葛氏, 祭則寡人)"('삼국지후주전三國志後主傳' 주注에 인용된 '위략魏略')라고 한탄할 만하다. 하지만 유선은 한 나라를 통치할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결국 쟁쟁한 신료들의 충간을 멀리한 채 황호黃皓와 같은 비루한 환관에게 정사를 맡겨 망국의 군주가 되고 말았다. 촉한이 멸망한 후 위나라는 유선을 낙양으로 이주시켜 안락현安樂縣을 봉지로 주었다. 하루는 사마소司馬昭가 연회를 베풀고 촉나라 음악을 연주하자 망국의 신하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희희낙락하여 사마소가 연유를 묻자 "즐거워 촉나라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안락하여 고향 가는 것조차 잊어버린다는 뜻의 사자성어 '낙불사촉樂不思蜀'의 연원이다.

명나라 제13대 만력제. 묘호는 신종.

조정에 승상부가 등장한 것은 진나라 시절이지만 천자를 보좌하는 기구는 이미 상商 때부터 있었다. 태재太宰, 윤尹, 태사太師 등이 그것인데, 이후 상국相國, 승상, 대사도大司徒, 시중侍中, 중서령, 상서령, 중서사인中書舍人, 내각대학사內閣大學士, 군기대신軍機大臣, 그리고 청나라 총리에 이르기까지 각 조대별로 이른바 재상宰相이라고 부르는 만인지상萬人之上, 일인지하一人之下의 관직이 존재했다. 재상의 '재'는 원래 집에서 일하는 노복이나 노예를 뜻하는 회의자會意字로 주관이나 주재의 함의를 지녔으며, 이후 관리를 나타내는 명사로 사용되었다. '상'은 보좌한다는 뜻이니 황제의 통치를 보좌하여 군국대사를 주재한다는 의미이다. 재상은 그런 관직의 범칭일 뿐 관직명이 아니다.

만력제의 지하궁전 정릉(定陵).

봉건전제 체제 하의 중국 정치는 절대적인 황권을 중심으로 조정에서 이루어졌다. 조정은 내정과 외정으로 구분되어 군권君權과 신권臣權이 상호 보완, 견제할 수 있는 양호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상당히 모범적인 유비와 제갈량의 경우도 있고, 소하蕭何, 조참曹參 등 공신들이 승상을 맡았던 서한 시절도 비교적 괜찮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조조는 승상이었으나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했다(挾天子以令諸侯)"는 말처럼 황제를 뛰어넘는 막강한 권력주체였으며, 반대로 헌제獻帝는 유명무실한 껍데기 황제였다. 진나라 시황제는 지고무상의 권력을 행사하며 승상의 보좌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후사는 황제의 의도와 상관없이 승상 이사李斯와 환관 조고趙高에 의해 결정되었다. 신권이 군권을 우롱한 예이다.

황권 강할 때 신권 잇단 수난
신권이 성장하면 군권 위축도
자연스레 나라의 쇠퇴 불러와


반면에 황권이 강할 때는 신권의 수난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예를 들어 한 무제는 승상과 공경대부들로 이루어진 외조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의 측근을 중심으로 중조中朝를 만들었다. 황제가 직접 통치를 강화하니 승상부인 외조外朝가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무제 시절 승상은 전체 13명인데, 그들 가운데 면직된 이가 일곱, 죄를 범해 자살하거나 하옥된 이가 다섯이다. 절반이 넘는 승상이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셈이다.

제갈량의 무후사(武侯祠). 유비의 사당인 한소열묘(漢昭烈廟)와 같은 곳에 있다.

승상의 임기는 가장 긴 것이 11년, 가장 짧은 것이 1년이었다. 명나라 개국황제 주원장은 승상부 격인 중서성中書省을 폐지하고 승상을 없애버리고 육부六部를 통한 직접 통치에 나섰다. 이후 역부족을 실감하여 문연각文淵閣, 무영전武英殿, 화개전華蓋殿 등에 대학사를 두고 이른바 내각을 설치했지만 이는 황제의 고문 역할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신권의 추락에 신료들은 잠자코 있었을까? 내각은 점차 위상이 높아지더니 가정제嘉靖帝 이후 육부六部를 능가했으며, 임진왜란 때 명군을 파병한 황제로 명십삼릉明十三陵 가운데 유일하게 개방되어 있는 능묘의 주인공인 만력제萬曆帝(묘호 신종) 때는 내각수보內閣首輔(예를 들어 장거정張居正)가 재상과 유사한 역할을 맡아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만력제는 신권의 성장에 군권이 주춤거리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처음에는 태자를 세우는 일로 내각과 갈등을 빚다가 근 30여년 동안 조회에 참가하지 않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료들은 어찌할 수 없었다. 명대는 중국에서 가장 빛나는 관리체제를 갖춘 사회라고 하는데, 황제가 조회에 나오지 않으니 무슨 결재를 받을 것이며, 무슨 정사를 논의할 것인가? 명조는 여기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허창(許昌)에 있는 조조의 승상부.

이렇듯 내정과 외정의 구분은 그리 명확하지 않았다. 군권과 신권의 갈등과 견제 속에서 외정에 속해야할 정치기구나 관직이 내정에 속하거나 내정에 있어야할 이들이 외정에 참여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상서령은 한 무제가 황권 강화를 위해 내정에 설립한 관직으로 환관이 맡기도 했다. 궁형을 받아 환관이 된 사마천은 중서알자령中書謁者令으로 임명되었는데, 상서의 일을 겸직했다. 하지만 수당대에 이르러 상서령은 외정인 상서성의 장관으로 재상직으로 바뀌었다. 이렇듯 내정과 외정은 후대로 들어오면서 의미가 퇴색하면서 아예 다른 뜻이 되고 말았다.

명나라는 원래 응천부應天府(지금의 남경)를 수도로 삼았다가 1424년 태조 주원장의 넷째 아들인 연왕燕王 주체朱체 시절에 북경으로 천도했다. 그가 북경에 건설한 황궁이 바로 자금성紫禁城인데 이자성李自成의 난리 때 전소되어 청조 시절 새롭게 축조되었다. 자금성은 구조나 효용에 근거하여 건청문乾淸門을 중심으로 외조外朝와 내정內廷으로 구분된다. 내정과 외정은 사라지고 외조와 내정으로 바뀐 셈이다. 남쪽으로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이 자리한 외조는 황제가 조회하여 권력을 행사하거나 전례典禮를 거행하는 곳이고, 건청궁, 교태전交泰殿, 곤녕궁坤寧宮이 자리한 내정은 황제와 후비 등이 기거하는 곳이다. 명청대의 황궁은 오로지 황제를 위한 곳이다. 더 이상 승상부가 따로 있을 리 없고, 조정 대소신료들은 황궁의 작은 문을 통해 출퇴근할 뿐이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명대의 내각이나 청대 만주왕족으로 구성된 의정왕대신회의議政王大臣會議가 황제를 보좌하거나 의결하는 기구라고 하나 군권에 대항할 수 있는 신권의 상징이 아니라 단지 고문역할에 만족할 수 없었음을 뜻한다. <심규호·제주국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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