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은 벗었지만… 여전히 외로운 4·3수형인

누명은 벗었지만… 여전히 외로운 4·3수형인
양근방 할아버지 70년 만에 억울함 풀었지만…
연좌제·경찰 감시로 가족 뿔뿔이… 설날도 조촐히
  • 입력 : 2019. 01.31(목) 17:26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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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방 할아버지가 지난해 제70주년 4·3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들고 있다. 송은범기자

"피해보상 이뤄져 6남매 모아놓고 이야기 하고파"

"총을 3번이나 맞은 것도 모자라 10년 넘게 억울한 옥살이까지 하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빨리 피해보상이 이뤄져 뿔뿔이 흩어진 6남매를 모아놓고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제주4·3 수형생존인 양근방(87) 할아버지는 지난 17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자신에게 씌워진 누명을 70년 만에 벗었다. 당시 이뤄진 군사재판이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옥살이를 시켰다고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억울함은 풀렸지만 양 할아버지에게 다가오는 설 명절은 여전히 외로운 날이다. 수십 년 동안 따라다닌 '4·3수형인', '빨갱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가족을 떠나 도피 아닌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고, 자식들은 연좌제로 취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법원 선고가 있던 날 강원도에 사는 큰아들에게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행복해지세요"라는 전화로 큰 위로를 받았다.

 "15살에 옥살이를 시작해 30살에 형무소에서 석방됐습니다. 이후 마음을 잡고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경찰서에서 수시로 불러서 때리고 모욕을 주는 거예요. 결국 제주를 떠나 육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고, 자식들은 아비가 없는 상황에서도 경찰이나 대기업 입사에 도전했지만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 때문에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이번 설날에는 조촐히 음식과 술을 준비해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생업에 바쁜 자식들은 제주에 오지 못하지만 4·3 당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형님들과 자신의 옥바라지를 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근방이가 누명을 벗었습니다"라며 술 한 잔 올리기로 한 것이다.

 "설날이 지나면 곧바로 국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할 겁니다. 나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이어진 피해를 이제라도 회복하고 싶어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제 건강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생존해 있겠습니다. 내가 죽으면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안 돼요."

 양 할아버지는 자신처럼 누명을 벗지 못한 또 다른 4·3수형생존인들을 위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4·3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살아 있는 수형인도 대부분 90살을 넘겨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군사재판 무효화'가 담긴 특별법 개정에 정치권이 부디 힘을 모아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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