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녀를 말하다 2부] (8)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출항해녀

[한국 해녀를 말하다 2부] (8)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출항해녀
개발 광풍 속 삶의 터전 바다 시나브로 줄어들어
  • 입력 : 2018. 11.21(수) 20:00
  • 채해원 기자 seaw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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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출신 문순임(80·오른쪽)·고길자(76) 해녀

스쿠버다이버·크루즈항에 작업터전 사라져
30년 전 마을해녀 40~50명… 현재 6명만 남아
"해녀 있는 줄 모르는 사람 많아… 대 끊길듯"



아바이 순대와 오징어 순대로 유명한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의 아바이마을.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까닭에 아바이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에도 해녀들이 존재한다.

30년 전 속초시 청호동에 활동하던 해녀는 모두 제주 출신으로 40~50명 가량 됐다. 그 중 대부분이 고령으로 돌아가시고 은퇴하면서 10년 전인 2009년 마을 해녀수는 열 댓명으로 급감했다. 현재 어촌계 소속으로 남아 있는 해녀는 모두 5명에 불과하다. 제주출신인 문순임(80), 고길자(76) 해녀를 비롯해 강원도 토박이로 출향해녀들로부터 물질을 배운 윤금월(60), 김금옥(60) 해녀, 부모님이 제주출신으로 속초에서 물질을 배운 이정숙(55) 해녀가 바로 그들이다. 이곳에서 해녀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물질을 그만두면 속초시 청호동의 해녀는 그야말로 대가 끊어지는 셈이다.

해녀복지회관에서 청호동 마을해녀들이 모여 얘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길자, 문순임씨와 제주해녀들로부터 물질을 배운 김긍옥(60) 해녀회장, 윤금월(60) 해녀.

취재진이 속초시 청호동을 찾은 지난 9월 16일엔 이정숙 해녀를 제외한 4명의 해녀들이 물질을 위해 일주일만에 해녀복지회관에 모였다. 어촌계에 회비만 내면 언제든지 마을 바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수산자원이 줄어든데다 작업터전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전엔 날씨만 좋으면 언제든 물질에 나섰지만 지금은 작업일수가 1년에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윤 씨는 "방파제 공사 등 개발이 계속되다 보니 남은 자연이 하나도 없다. 처음 물질을 배울 때 돌이 안보일정도 많이 자랐던 자연산 다시마, 미역이 지금은 전혀 없다. 성게·전복 등 모든게 전의 3분의 1도 안된다"면서 "크루즈선과 계속되는 개발로 바다를 다 빼앗겼다"고 말했다.

해녀회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해녀에 관심이 많이 떨어지다보니 속초에 해녀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면서 "그래서인지 바다를 개발하기 전에 해녀와 논의하는 것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출향해녀인 문 할머니도 "이곳에서 해녀의 힘이 약하니 보상도 하나도 없다"며 "바다를 달라고 하면 말없이 다 줘야…"라며 말을 줄였다.

2009년 강만보 사진작가가 발간한 '동해안의 제주해녀' 사진집에 수록된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 출향해녀들의 모습을 해녀들. 이 10년 전을 회고하며 당시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속초시에 속한 유일한 섬으로 10년전만 해도 수산자원이 많아 노다지섬으로 불렸던 '조도'에서의 작업하는 횟수는 1년에 채 20번이 되나마나 한다. 주된 이유는 스킨스쿠버들과의 갈등이다. 청호동에서 1.4㎞ 떨어진 조도는 최대 수심이 12m의 수중경관이 우수한 곳으로 스킨스쿠버들 자주 찾는 곳이다.

고 할머니는 "물건이 없어서 조도에 가지 않는다"며 "스쿠버들 중 물건을 해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문 씨는 "속초시에서 섬 인근에 스쿠버 활동구역을 정해줬는데도 지키지 않는다"며 "레저로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해산물을 채취해 판매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 판매까지 한다는 건 레저가 아니라 직업"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들은 점점 해녀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한목소리로 아쉬워했다. 1세대 제주출신 해녀들이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을 역사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 할머니는 "처음왔을 때 물질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고생이 많았다"며 "당시 속초 제주도민회가 '해녀를 우습게 여긴다'면서 해녀조합을 설립한 이후에야 아무데서나 순조롭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출향해녀를 살아 있는 역사라며 "제주출신 해녀 어머니들은 처음 여기서 물질을 할 때 적삼 속옷을 입고 불턱에서 불을 쬈다. 10년 전만 해도 이분들이 채취한 성게는 일본에 모두 수출된 외화벌이를 한 애국자"라고 평했다.

해녀들이 물질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머님들이 이곳까지 와 물질을 가르쳐주고 해녀문화도 퍼뜨려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제주출신 해녀 어머님들이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는데 제주도에서도 알아주지 않는다. 본인의 삶을 위해 타향살이를 시작했지만 삶을 개척하고 해녀 문화를 퍼뜨려준 사람을 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 씨도 "유네스코에 해녀가 등재된 이후에도 출향해녀와 다른 지역의 해녀의 삶이 달라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잠수증을 의료원에 낸적이 있지만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해녀들이 물질작업을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라며 전체 해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필요성을 강조했다.

마을해녀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 하던 이들은 끝으로 "독도에서 한 번, 통일되서 해금강에서 한 번 물질하는 것이 마지막 소망"이라며 해녀가 천직임을 보여줬다. <특별취재팀=팀장 고대로 정치부장·이태윤·채해원 기자 / 자문위원=양희범 전 제주자치도해양수산연구원장, 좌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조성환 연안생태기술연구소장, 김준택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조성익·오하준 수중촬영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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