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며칠 뒤면 6월, 보훈의 달이다. 희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얹어 본다. 제주에서 6월은 제주여성해병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군인은 제주 여성이란 점이 주목됐기 때문이다.
수년 전 어느 퇴역 군인의 기고에서 제주여성해병이 소개됐다. 해병 3·4기 모집에 제주도 내 여중생, 미혼 여교사 할 것 없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126명이 지원 입대했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여군이 자연스럽지만, 과거 방위와 병역의 영역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도왔다는 행주대첩 야사에서 보이듯이 여성은 국난에서 보조역할을 할 뿐이었지 병역을 담당했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반면 제주에는 여정(女丁)이 있고, 여성이 보초(番)를 섰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제주에서 전혀 특이하지 않은 일상이다.
과거 제주를 바라본 지리학적 인식은 변방의 하나다. 탐라국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외지로 취급됐다. 다 같은 조선왕조의 백성이기는 하나 국가 차원의 혜택도 별로 없다. 오히려 차별적 대우와 과중한 방위업무, 진상품으로 매우 부담되는 생활의 연속이다. 결과는 제주에만 존재했던 육고역(六苦役)과 여정으로 방증된다.
육고역은 현재 시점에서 굳이 비교 대상을 본다면,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직업군으로 소위 3D업종에 가깝다. 차이점은 의무가 아닌 본인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다.
육고역에는 귤·전복·약제 등 진상과 군역·마장 관리·관청 토지 경작·사공의 보조 선원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양인 신분이지만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천민의 역을 져야 하는 계층이다. 한번 고역을 지게 되면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매년 육고역으로 인한 고충과 흉년·질병·왜구의 침입 등으로 남성들의 사망과 실종은 다반사였다. 그 외에 어로 활동이라든가 공역에서의 차출 등으로 생사를 달리하는 경우도 많다. 남성의 수적 부족은 여정이 돼 군역을 대신해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 조선 정조 당시 작성된 읍지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약 25% 정도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런 여성의 삶은 4·3으로 이어졌다. 성 담쌓기 동원, 민보단, 특공대 활동에서도 활약상을 무시할 수 없다. 오랜 시간 남녀의 역할 구분 없이 살아왔던 문화적 경험의 축적은 한국전쟁에서도 거리낌 없이 자발적 자원입대로 이어진 것인가 싶다.
현재 제주 여성의 삶과 문화에 대한 아카이빙은 계속되고 있다. 해녀의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비롯해 항일기 여성의 수훈 작업으로 그 성과를 보았다. 제주 여성의 삶에 대한 다양한 학계의 연구 역시 여성의 토착적 관습을 해석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리적 환경과 사회문화에 적응했던 여정의 DNA는 아직도 흐른다. 그리고 제주 여성의 진취적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수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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