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행정용어·판결문

[기획]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행정용어·판결문
[575돌 한글날] 도민 생활 직결 고시·공고문, 어려운 행정 용어·한자어
무죄 선고에도 "무슨 말?" 두리번거리는 피고인… 판결문은 '외계어'?
  • 입력 : 2021. 10.07(목) 17:47
  • 강다혜기자 dh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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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과 국민 사이에서 사용하는 공공언어의 핵심은 쉽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느냐다. 주민들의 실생활에 직접 관련된 행정 업무가 많은 공공기관에서 직원과 도민 사이 소통을 가로막는 행정용어, 일본식 법률용어와 복잡한 문장으로 쓰여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판결문을 중심으로 '공공언어' 쓰임 실태와 중요성을 살펴본다.

▶주민 밀착형 행정이라면서… 용어는 생소=국립국어원은 공공언어를 행정부와 지자체 등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로 정의한다. 또 국어기본법은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춰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민원서식, 고시·공고문 등 공공문서는 알 수 없는 단어와 난해한 문장으로 민원인을 당황하게 한다.

공공문서는 법령으로 정해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뉜다. 이중 주민등록증 신청서, 인감증명서 등 법령으로 정해진 공공문서는 반드시 법에 정해진 양식에 따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법령용어가 다수 포함돼 이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공문서에서 주로 발생하는 공공언어 오류는 ▷띄어쓰기 ▷외래어·한자어 남용 ▷길거나 생략된 문장, 부정확한 표현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가령 '매도'또는 '양도', '제적등본', '전입세대 열람', '폐쇄대장·말소대장·구대장·가옥대장' '의료수가' 등의 한자어로 쓰인 단어는 공무원과 주민 사이 소통을 어렵게 한다.

공공언어로 개선되지 않은 단어나 문장은 행정기관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서귀포시가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 중 "주요점검내용은 지반, 균열, 구조체 노후화 등 구조안전성과 지붕, 옥상, 내·외부 마감, 창호 상태 등 건축 마감 상태 및 유지관리, 소방시설 등 시설물 관리상태를 점검한다"와 같이 명사형 나열, 띄어쓰기 오류, 주술구조가 맞지 않는 비문 등은 개선이 필요하다.

▶낯선 일본식 법률용어에 해석도 어려운 판결문='법조계의 언어'인 법조문, 판결문에 쓰이는 법률용어는 어렵고 복잡한 문장으로 악명이 높다. 일본식 한자어로 쓰인 법률 용어가 만연한 데다, 문장의 호흡이 길어서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렵고, 법논리를 압축해서 적는 경우도 있어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에 일반인에겐 여러 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심지어 그래서 누가 이겼는지, 형량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경우도 더럿 생겨난다. 법정에선 무죄 선고를 받거나 형량을 판결 받은 피고가 판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판결문 이해를 어렵게 하는 요인은 ▷일본식 법령 용어 ▷우리말 어문 규범에 맞지 않는 경우 ▷번역투 또는 복잡한 문장 등이다.

가령 "그 법률관계에 터 잡아 채권이 성립되리라는 점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이 있으며…", "피고의 잘못으로 인한 불이익을 이 사건 근로계약의 존속을 원하는 원고에게 돌리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것인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등 실제 판결문에서 발췌한 이들 구절은 언뜻 봐선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이처럼 법률 용어에 일본어가 많은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법률이 그대로 이식됐기 때문이다. 한글날을 맞아 법조문과 판결문의 쉬운 우리말 사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배영환 국어문화원장은 "행정용어나 법률용어는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며 "예전에 비해 많이 순화되긴 했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공언어의 핵심은 생산자가 누구든 대상이 불특정 다수라는 점이므로, 쉬운 우리말로 순화해 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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