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24)구좌읍 하도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24)구좌읍 하도리
  • 입력 : 2015. 01.13(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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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도래지와 아래 사진은 마을회관에서 마을 동북쪽을 바라본 모습.

저어새 날갯짓처럼 역사·환경 관광지로 비상을 꿈꾸며
탐라순력도 별방조점·별방시사 수록된 중요한 역사적 장소
역사관광자원의 활용가치 이끌 정비 사업은 흐지부지 상태
시베리아·중국에서 이동하는 철새들 월동지·중간 기착지
75만3000㎡ 면적… 저어새·큰고니 등 71종 7854개체수 확인
당근 주산지 각광… 밭담 원형 잘 보존돼 경관적 가치 높아



방대한 마을이다. 자연과 역사, 문화를 일거에 담아내기엔 역부족인 마을. 누가 봐도 사람 살기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선사유물도 있지만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설촌 모습은 1300년 경,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제주목 포구 중 도의여포라고 표기하였다.

도의여는 토끼섬 부근. 그 도의여·을이 커져서 웃도의여모을과 알도의여·을로 나뉘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앞 글자만 남아 웃도의여리는 상도리, 알도의여리는 하도리가 되었다. 창홍동, 동동, 굴동, 신동, 서문동, 서동, 면수동. 총 7개 동네를 거느린 하도리는 굴가름이라고 부르는 굴동과 동동에 먼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 역사의 중요 지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 중종5년(1510) 제주목사 장림이 우도를 왜구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김녕방호소를 별방으로 옮겨 진성을 구축하면서다. 탐라순력도 41점의 그림 중 별방조점(別防操點)과 별방시사(別防試射) 두 점이 수록된 중요한 역사적 장소다. 제주의 9개 진성 중에 특별한 방어가 필요한 진성이라는 뜻을 가진 별방은 하도리를 이르는 다른 명칭이기도 했다.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성곽으로 둘레가 1008m. 1974년에 제주도문화재로 지정,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진성 복원 사업이 이뤄졌다. 성곽만 복원되고 역사관광자원으로써의 활용가치를 이끌 정비 사업은 흐지부지 된 상태이다. 복원공사를 하는 1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역주민들은 얼마나 큰 기대에 부풀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관광차들이 수 없이 들락거릴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성곽만 보수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프로그램은 마련하지 못했던 것. 소프트웨어 빈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행정적 사례라고 해야겠다. 한심한 노릇이다.

원형이 잘 보존된 밭담.

별방진성과 하도포구.

별방진성 성벽 하단에 있는 드렁물.

하도리의 대표 이미지는 환경 자원에 있다. 75만3000㎡ 면적을 가진 철새도래지. 연안습지로써 해수와 담수가 섞여있는 기수습지에 해당한다. 새들이 무려 71종 7854개체수가 확인되는 곳이다. 시베리아나 중국 등에서 이동하는 철새들이 월동지 또는 중간 기착지로 삼는 곳이다. 국제적 희귀조류인 저어새가 찾아오는 곳으로 전 세계 1200여 마리 중 1.7%을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쇠가마우지, 큰 기러기, 물수리와 같은 보호조류와 천연기념물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원앙, 황조롱이, 개구리매 등이 하도리 철새도래지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저수지처럼 보이지만 인근 창흥동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연은 이러하다. 1957년 식량증산 정책으로 벼를 수확하기 위해 바닷가 방향으로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지만 제방 밑으로 해수가 들어오는 바람에 실패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60년 가깝게 이 실패한 저수지는 여름이면 썩은 냄새를 풍기며 지역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하도리 최대의 골칫거리는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다.

조건수 이장

조건수(57) 하도리장은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하루 속히 해안도로가 지나가는 제방을 터서 자연 상태로 돌려줄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 제방 위 도로를 아름다운 다리로 만들어서 세계적인 관광자원이 되도록 한다면 환경보전과 지역경제발전 일거양득이 될 것입니다." 이미 민선6기 제주도정도 인식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했다. 능동적인 실천의지가 관건이며, 지역주민과의 약속 이행의 차원에서 조속한 시행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너른 경지면적을 가진 하도리는 당근 주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토질에 알맞은 경제작물로 그 역할을 충분하게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밭담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서 경관적 가치가 높다. 밭농사를 중심으로 어업과 축산이 주민 생업의 토대다. 굴동포구, 동동포구, 구도리통포구, 가리묻은개 포구, 한개포구와 같이 포구가 많은 곳이다. 해녀만 해도 200명 넘게 바다를 생존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축산 또한 발전된 곳이다. 24만 5000 평 너른 공동목장에 246명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다. 김성은(65) 축산계장의 포부는 대단했다. "기필코 말산업특구 사업을 유치하여 동부지역에 경쟁력 강한 말산업 중심지로 만들겠다." 행정적 노력이 뒷받침 된다면 주변 관광지들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박미정(55) 부녀회장의 꿈은 소박하면서도 현실적이었다. 농업 인구가 대부분이고 특히 당근농사를 많이 하다 보니 7개 동 모든 지역에 목욕탕이 있었으면 한다는 것. 농촌복지의 중요한 요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묻고 있는 소리로 들렸다. 하도리의 미래는 역시 청년회장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와 동업(?)을 하고 있다는 한상민(38) 청년회장은 올해 6월에 하도리 주민이 되는 첫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생이 될 때에는 분교위기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849세대 2000 명 가까운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 초등학교에 학생 수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다른 마을처럼 공동주택이라도 지어서 젊은 부부들을 불러오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살아갈 일자리 만들기를 병행하면서.

하도리의 저력은 막강했다. 미래 또한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999년 장수마을로 지정된 곳. 장수는 생활환경이 작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적 요인이 이를 견인해야 한다. 1차산업을 중심으로 삶을 영위하는 주민들 입장에서 '제 값 받기'보다 더 한 행복 비결은 없을 것이다. 세월은 고장 나지 않는다. 하도리의 역사도 결코 고장 나는 일 없이 앞으로 달려갈 것이다, 날아오를 것이다. 저어새의 날갯짓처럼.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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