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할머니의 감사

[생로병사]할머니의 감사
  • 입력 : 2014. 11.21(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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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의 일이다. 전라북도 익산시의 한 작은 보건지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할 때였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혈압약을 지으러 오시는 80이 훌쩍 넘은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자식들은 출가하고 이제는 혼자 지내신다는 할머니는 늘 웃으며 오시고, 진료 중에도, 진료가 끝나고 집에 가시면서도 늘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작은 것 하나 하나에 감사하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난 "어떻게 이렇게 감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던 것 같다.

세상이 말하는 돈이 많은 것도, 사회에서 알아주는 직위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늘 감사해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곳에서 3년간의 근무를 마칠 때, 할머니께서는 밥 사먹으라고 하시며 오천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나에게 건네주셨다.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서 그 지폐를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이 글을 써야지 하며 지폐를 찾아봤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를 못했다. 어디에 두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을에는 풍성한 과일과 곡식들의 추수가 있어서 좋다. 우리의 '추석'이나 외국의 '추수 감사절'도 그런 풍성함에 대해 감사해하는 모습인 것 같다. 감사함을 고백하고 내 삶에 대해 스스로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삶에 기쁨이 되고 힘을 주는 것 같다. 병원에서 일하며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인 삶 속에서 '나의 감사'는 어떤지 생각해본다. 2년 전 지금 있는 병원에 근무를 시작하며 출근하는 길에 '귀한 직장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하며 출근 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내 모습은 그런 감사함보다는 처리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부담감, 까다롭고 불평하던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생각들로 힘들어 하는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역사에서 가장 지혜로웠다고 하는 솔로몬 왕은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라고 기록하였다. 수고하는 우리의 인생을 잘 표현한 것 같다. 매일 접하는 환자분들과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또 내 삶을 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우리의 삶이 버겁고 하루를 지내기가 고단하다는 것이다. 기쁘고 감사할 일 보다는 불평하고 비난하고 남과 비교할 일이 더 많은 것이 삶인 듯하다. 가끔씩 아내는 직장에서 돌아온 나에게 오늘 어떻게 지냈냐며 감사한 일이 있었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잠깐 생각해본다. '오늘 감사한 일이 무엇이었지?' 감사한 일을 한가지라도 기억하며 하루를 마칠 수 있는 삶을 소망한다.

<김영석 제주대학교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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