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생체 간이식한 어느 노부부의 사연

[생로병사]생체 간이식한 어느 노부부의 사연
  • 입력 : 2014. 06.13(금) 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간이식을 받은 환자는 대부분 수술 전과 후가 드라마처럼 좋아지기 때문에, 이렇게 좋아지는 환자들을 보면 의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이면에는 생체 간이식을 시행 받는 환자나 간을 기증하는 공여자 사이의 일들은 수혜자 자신의 질병 깊이 만큼이나 사연이 많다. 국립암센터 간암센터에서 간이식 분과에 속했던 시절의 일이다.

74세의 남자 환자로 우측 간에 간암이 발견됐으나 간경변증을 갖고 있어서 수술적 절제는 불가능했고, 간암의 크기가 커서 다른 근치적인 방법은 간이식 이외에는 없었다. 간이식의 필요성을 환자와 75세인 부인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간을 공여할 자녀들이나 친지가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남편은 "늙어서 얼마나 산다고….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하고는 일어서서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부인도 따라 나갔다. 몇 분 후에 부인이 조심스럽게 진료실 문을 열고는 "선생님, 제가 남편을 위해 간을 기증해도 될까요?"하고 물었다. 부인이 아무리 건강 관리를 잘해왔더라도 아직까지 이렇게 고령의 간 공여자에 대한 사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부인은 다시 재차 간곡하게 물어 보았다. "제가 남편을 위해 간을 기증하고 싶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였다. 공여자 검사를 시행해 자식들 중 되는 사람이 없으면 부인을 고려해 보겠노라 대답했다. 자식들이 있었으나 그들의 나이도 중년이어서 검사에서 다 부적격이었다. 마지못해 부인을 검사했고 공여자로서 적합했다고 간이식 의료진의 회의에서 결정됐다. 자식들은 이번 '간이식 수술로 두 분 모두 잘못되면 어쩔까' 하는 걱정이 있어 수술 동의를 주저했지만, 어머니의 의지를 꺾진 못했고 마지못해 동의했다. 간이식 수술은 진행이 됐고 11일 만에 공여자와 수혜자 모두 아무런 합병증 없이 퇴원할 수 있었다.

1년이 지나서 간이식 환우 모임에서 이들의 사연이 소개됐고, 부인의 그때 당시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저 자신도, 간을 기증하는 것이 겁이 났어요. 하지만 죽더라도 이 남자와 한날한시에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니 자신이 꼭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수혜자인 남편은 부인의 마음을 아는지 잡고 있던 손을 꼭 잡았다.

젊은 부부들이 우리 부모들 시대에 비해 좀 더 원만한 부부 사이로 지내지만 이들 부부처럼 될 수가 있을까? 나 자신도 결혼해 부인과 원만한 사이로 지낸다고 자신하지만 고희를 넘긴 이들 부부처럼 생명까지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대답은 부정에 가까웠다. '이들 부부처럼은 아닐지라도 그런 마음이 들게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김영규 제주대학교병원 외과>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68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