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당시 위미 마을은 물론 남원면 서부지역 토벌의 중심이었으며 많은 주민들이 공포에 떨었던 위미지서 옛터. 위미리 주민들의 지난한 삶을 증언하는 위미초등학교의 4·3 성담.(사진 오른쪽)
[오승국의 4·3 유적지를 찾아서](69)에필로그-4·3…
[오승국의 4·3 유적지를 찾아서](68)제주농업학교
[오승국의 4·3 유적지를 찾아서](67)제주항과 수…
[오승국의 4·3 유적지를 찾아서](66)제주항과 수…
[오승국의 4·3 유적지를 찾아서](65)서호동 시오…
[오승국의 4·3 유적지를 찾아서](64)신엄리 자운…
[오승국의 4·3 유적지를 찾아서](63)위미리 위미…
[오승국의 4·3 유적지를 찾아서](62)대정고을 동…
[오승국의 4·3 유적지를 찾아서](61)유수암리 검…
[오승국의 4·3 유적지를 찾아서](60)이호2동 호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