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제주에 대한 그리움 '새벽' 연작 낳았다"

"고향 제주에 대한 그리움 '새벽' 연작 낳았다"
한라일보 갤러리 이디 개관기념 초대 강승희 작가와 만남
"작업의 뿌리 오현고 미술부… 미술 통해 자유로운 사유를"
  • 입력 : 2020. 05.24(일) 18:11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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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한라일보 1층 갤러리 이디에서 강승희 작가와의 만남이 펼쳐지고 있다. 이상국기자

그는 40여 년 전 제주시 별도봉으로 청중들을 이끌었다. 틈이 생길 때면 학교 뒤편 별도봉에 오르는 한 소년이 그곳에 있다. 소년은 파도가 없는 날이면 호수처럼 잔잔했던 그 바다에서 미지의 세계를 꿈꿨다. 막상 섬을 벗어나 서울 생활을 이어갔을 땐 고향이 그리웠다. 그는 제주에서 눈뜨면 보이던 한라산의 회색 빛을 서울에 사는 동안엔 영영 못볼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고향이 다가왔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 운동으로 동네를 달리던 날이었다. 콘크리트 숲으로 둘러싸인 삭막한 도시는 새벽녘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저 멀리 빌딩들이 그려내는 풍경에서 제주섬 가운데 서있던 한라산의 모습이 연상됐다. 판화 작업으로 '새벽'이 탄생한 배경이다. '새벽' 연작은 도시에서 시작되었지만 거기엔 고향이 먼저 있었다.

지난 22일 오후 4시 한라일보 사옥 1층 갤러리 이디(ED). 개관 기념 '제주, 제주 너머' 초대전 강승희 작가(추계예술대 판화과 교수)가 관람객들과 만나며 풀어낸 이야기다.

이날 강 작가는 1시간여에 걸쳐 국내 미술시장의 흐름과 지난 시기의 작업 과정을 찬찬히 들려줬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어지던 해에 대학에 입학했다는 그는 최루탄 냄새가 캠퍼스에 사라질 날이 없었던 청년 시절을 지나 '다양성'으로 요약될 수 있는 오늘날 현대미술의 세계까지 안내했다.

특히 강 작가는 자신의 미술의 뿌리로 오현고등학교 미술부 시절을 꼽았다. 그는 마땅한 미술학원이 없었던 시절, 미술교사로 재직했던 강광 작가 등을 통해 어깨 너머로 '프로의 정신'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갈수록 테크닉이 세련되어지더라도 그 작업의 바탕엔 오현고 시절의 미술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림을 통해 관람객들이 마음껏 생각하고 자유롭게 느꼈으면 합니다. '자유로운 사유'를 하나의 철학처럼 여기며 작업해 왔어요. 그 뿌리가 제주이고, 10대 시절의 미술부인 겁니다."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강 작가는 대학 4학년 때 판화 수업을 들었고 이를 계기로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는 등 일찍이 판화가로 이름을 얻었다. 동판화를 위주로 30년 넘게 이어온 판화는 한편으로 그에게 고된 노동이었다. 10년 전부터는 그림 작업을 조금씩 늘려갔고 지난해 서울 노화랑 개인전은 판화가 아닌 회화로 온전히 채웠다. 하지만 판화의 세계를 회화로 가져오는 데 안료 선택 등 어려움이 많았다. 작업의 뿌리를 계속 떠올렸고 바다 위 배들이 떠있는 '새벽-21802'(2018)를 그리면서 비로소 작업이 풀리기 시작했다. 갤러리 이디에도 그 작품이 걸렸다.

그는 오랜만에 여는 제주 전시에서 '어둡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검은색'을 수묵화 같은 화면에 담아냈다. 작가는 그걸 "화산섬 제주 땅의 색깔"이라고 말했다. 갤러리에 펼쳐진 그의 작품을 본 어떤 이는 "치유가 되는 느낌"이란 소감을 꺼낸 적이 있다. 지금 제주에게 필요한 건 그 검은색과 같은 소박함인지 모른다. 강 작가는 이날 "한라산을 보면서 자란 회색에 대한 감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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