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미명] 상실과 애도 사이

[영화觀/ 미명] 상실과 애도 사이
  • 입력 : 2026. 07.20(월) 02:00  수정 : 2026. 07. 20(월) 07:28
  • 진명현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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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명'.

[한라일보] 우리가 무언가를 갑자기 잃었을 때 상실이라는 자각은 언제쯤 삶에 안착되는 것일까. 먼저 비명처럼 충격과 눈물이 발생할 것이고 부정과 추적의 탄식이 뒤따를 것이다. 망연자실과 자포자기의 비중이 커질 즈음에서야 무언가를 완전히 잃었다는 온전한 자각이 가능해질까. 그렇다면 나의 삶을 크게 차지하고 있던 존재가 사라진 자리는 무엇으로 메꿀 수 있을까, 아니 메꾼다는 개념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나는 있고 당신은 없다. 나는 당신이 없는 상태로 나일 수 없다. 상실과 애도 사이에는 자각과 체념으로 뒤엉킨 각자만의 연옥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어떤 것도 진짜일 리 없으며 가짜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이 살아 남은 자를 일으켜 세워 죽음 뒤의 삶에 가 닿게 할 지도 모른다. 이원영 감독의 영화 <미명>은 그렇게 이 희망과 절망의 요소들로 가득 찬 상실 후의 시간들을 그리는 영화다.

  몽골 역사를 연구하는 남편은 아내와 둘만의 공간에서 범상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남편의 생일상을 차리고 외출했던 아내는 그날 이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전날 밤 부부는 치킨을 시켜 먹으며 TV를 통해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목격했었다. 갑작스러운 소식 앞에 둘은 말을 얹지 못했었다. 사랑을 나누고 미래를 이야기하던 부부의 행복했던 일상이 하루만에 완전하게 뒤바뀌어 버린다. 비상계엄이라는 믿을 수 없는 뉴스를 접한 이들의 세상 또한 그랬을 것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아내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목소리를 잃는다. 그가 목소리를 잊은 것인지 잃은 것인지 빼앗긴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목소리마저 잃은 그는 텅 빈 집안에 홀로 남는다. 당신은 없고 나는 있다. 당신을 잃고 목소리마저 잃은 나는 내가 맞을까.

 어둠이 찾아오고 빛이 사라지는 겨울 밤의 고요한 시간에 잃어 버린 아내의 혼령이 그를 찾아온다. 아내의 존재를 직감적으로 깨닫는 남편은 휴대폰의 음성 어플을 통해 허공을 향해 소리를 띄운다. '당신 지금 여기 있는 거야? 당신이 맞다면 제발 불을 켜줘.' 그의 말투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니다. 이 공간 안에 찾아온 존재가 아내임이 분명하지만 또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불분명한 두 사람의 조우가 수차례 이어진다. 그 사이에 또렷한 소리들과 희미한 빛들이 존재한다. <미명>은 소리와 빛으로 상실과 애도 사이에 놓인 한 남자의 연옥을 채운다. 관객들은 빛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이 사랑의 목격자가 된다. <미명>은 놀라울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사랑의 영화다. 희미하고 불분명한 모든 요소들의 앞에는 강력한 사랑의 기운과 기력이 존재한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랑의 서사는 가능의 모든 부분들을 탐색한다.

 
<미명>의 사랑을 진혼곡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아직 상실이라는 자각에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세레나데를 부르는 이다. 아내가 좋아했던 파스타를 만들고 아내가 좋아했던 크리스마스 초에 불을 붙이며 아내의 존재를 소망한다. 대화를 시도하고 추억을 꺼내 차려 놓는 이에게 죽음이 이별의 통보일 리 없다. 급기야 그는 다른 방식의 소통을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몽골로 떠난다. 목소리를 찾아야 선명해질 것들을 믿기 때문이다.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삶을 덜컥 방문할 때가 있다. 죽음을 경유한 이별이 그 중 가장 큰 비보일 것이다. <미명>의 믿음은 믿어지지 않음을 확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는 당신을 잃지 않았고 잊지도 않았으니 우리가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은 비보 위에서 감정과 감각의 의지로 희망의 춤을 춘다. 일렁이는 마음들이 겹쳐지고 포개질 때 사랑은 형상을 얻는다.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이지만 달라진 것이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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