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척박한 제주 땅에서 피워낸 공생의 맛

[이 책] 척박한 제주 땅에서 피워낸 공생의 맛
정민경·이하영 외 지음 『제주미각』
  • 입력 : 2025. 10.17(금) 02:20
  •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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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의 여인들은 물질과 밭일로 바삐 지내느라 음식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일 수 없었다. 바다나 산에서 방금 구해온 재료 하나만 있으면 한끼가 뚝딱 완성됐다. 우영팟(텃밭)에서 금방 따온 나물을 넣어 음식 하나쯤은 손쉽게 만들어 내놓을 수 있었다. 제주의 척박한 환경은 자연에 순응하며 서로 돕는 공생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관혼상제 때에는 서로 도와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부조를 대신해 이웃에서 음식을 해오기도 했다. 낭푼(양푼) 하나에 밥을 가득 담고 몇몇 반찬을 모두 넣어 나눠 먹는 낭푼밥은 척박한 환경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제주 음식에 깃든 제주사람들의 삶에 대한 철학과 역사, 문화를 들여다본다. 고지영·김규태·김민경·김서영·김은희·문성호·안영실·이진영·이가영·이하영·정민경 등 제주가 고향이거나 제주에서 오래 살아온 인문학자 11명이 제주의 옛 문헌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제주미각'이다.

책에는 옥돔구이, 갈칫국, 자리물회, 멜젓, 돔베고기, 말육회, 흑우구이, 꿩샤브샤브, 몸국, 고사리 육개장, 성게 미역국, 고기국수, 보말칼국수, 빙떡, 오메기떡, 지름떡, 당근케이크, 보리개역, 감귤주스, 쉰다리, 고소리술 등 21가지의 제주 음식을 담았다.

화산회토로 이뤄진 제주는 대부분 흙이 날리는 뜬땅이어서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다. 쌀 농사를 짓기 어려워 조, 메밀, 보리, 콩 같은 잡곡이나 고구마, 감자 같은 구황작물을 주로 심었고 고사리, 옥돔, 보말, 무 등 육지나 바다에서 그때그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독특한 부분은 국물요리가 발달했다는 점이다. 제주 전통 음식 453가지 가운데 국물 요리가 78가지나 된다. 보리, 차조 등 거친 식감의 잡곡밥이 주식이었던 만큼 이를 부드럽게 먹기 위해 촉촉한 국을 곁들였다. 더욱이 물만 부어 끓이면 그 양이 많아져 여러 사람의 배를 채우기에도, 밭일·물질하느라 바쁜 이들의 몸과 마음을 녹이기에도 좋았던 것이 국물 요리였다. 저자들은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제주 사람들은 때로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때로는 힘을 합쳐 그들만의 음식문화를 만들어왔다"며 "제주 음식에는 단순한 맛이 아닌 생명력이 담겨 있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탐라순력도', '탐라지'등 옛 문헌 자료로 제주 식재료의 역사적 흐름을 살피고 자청비, 영등할망, 문전본풀이, 천지왕본풀이와 같은 제주의 전설과 신화도 짚는다. 7일 동안 열리는 결혼식 '일뤳잔치', 본제 전에 문전신에게 지내는 제사 '문전제', 돼지 한마리를 통으로 신에게 바치는 무속 의례 '돗제' 등 제주 고유의 문화 속 음식의 의미와 제주사람들의 나눔과 협력 정신, 세계관에 다가간다. 문학동네.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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