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45] 3부 오름-(104)북오름, 산 사이 바위 계곡이 있는 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45] 3부 오름-(104)북오름, 산 사이 바위 계곡이 있는 오름
북오름은 북과 무관, 북방어 기원의 고대어
  • 입력 : 2025. 09.23(화) 03: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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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을 '탐문'하는 학계의 풍토

[한라일보] 북오름은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 있는 표고 304.6m, 자체높이 86m의 오름이다. 덕천리 중에서도 상덕천 북서쪽 약 600m의 송당~선흘간 도롯가에 있다.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의 오름에 나오는 오름명의 유래 및 어원의 내용이다. 딱히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확신이 없는 표현으로 일관했다. 또한 이 설명은 여러 문헌에서 조각조각 떼어다가 엮어놓은 듯한 문장구조다.

북오름 남서쪽에 형성된 북오름굴, 북오름 지명 기원지다. 김찬수

"생김새가 북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북오름이라 한다고 전해지지만, 한국땅이름학회, 배우리 저술 '땅이름 속의 우리말'에서, '북'은 '산' 또는 '높다'라는 견해가 있는데 이에 의하면 북오름은 높은오름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실제 실체가 그다지 높지 않아 이에 대한 상세한 탐문조사가 필요하다."

이 설명 중 앞부분은 김종철의 오름나그네라는 책 내용이다. 뒷부분 "실제 실체가 그다지 높지 않아 이에 대한 상세한 탐문조사가 필요하다."라는 말은 두 눈을 의심케 한다. 지명은 범인을 잡는 수사관처럼 '탐문'한다고 밝혀지는 게 아니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학계가 그동안 지명해독을 '탐문'하는 방식으로 전개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름나그네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생김새가 북 모양을 닮았다하여 북오름이라 한다고 전해지며, 한자로도 '고악(鼓岳)'으로 표기돼 있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 그랬는지 도로변에서 보는 외관으로는 북 모양을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봉긋하게 통통한 모습이 여무진 오름이라는 느낌을 준다." 한자표기에 연연한 흔적이 역력하다. 고전에 나오는 '고악(鼓岳)'의 '고(鼓)'가 '북 고' 자임은 맞지만, 이것은 훈가자로 쓴 것이지 실제 북(鼓)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북오름 전경(정면 왼쪽), 웃바메기오름에서 촬영. 김찬수



방향이 잘못된 인용과 적용

원문 인용이 좀 길어지지만, 제주도 관련 학계의 현실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해서 좀 더 실어보겠다.

다음은 오름나그네라는 책의 내용이다. "산형이 북 모양으로 생겼다지만, 한쪽엔 굼부리가 벌어져 있을뿐더러 어느 쪽으로 보아도 북처럼 둥글 번번한 모양새가 아닌 것이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다. 북오름이라는 이름은 풍수설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어원 분석에 따르면 '북'은 '산'을 뜻한다는 견해가 있다." '땅이름 속의 우리말'의 인용 부분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산 이름들 가운데 불악산, 불암산, 북산 등, 고개 이름에 북재, 북고개 등의 음이 들어간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들 '불, 북' 중에는 '밝'을 그 뿌리로 하는 것이 적지 않다. 산지 지명에 이처럼 '불, 북'자가 많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 '밝'이 산 그 자체를 의미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밝'의 모음이 변한 것이 '붉'이고, 이 음에서 ㄱ이 떨어져 나간 것이 '불', ㄹ이 떨어져 나간 것이 '북'이다. 이들 산의 뜻을 지닌 '불'이나 '북'은 '높다'의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북오름은 '높은오름'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위의 제주의 오름이란 책은 오름의 지질학적 지리학적 현황을 주로 다룬 책이다. 그렇다 해도 원문 인용을 하면서 이를 밝히지 않은 것은 표절의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지명을 밝히는 일을 '탐문한다'는 식의 표현은 학문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오름나그네라는 책도 지명을 주로 다룬 책이라기보다 기행문에 가깝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지명에 대한 설명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독자가 이 부분을 마치 지명해설서로 인정하여 여기저기서 인용하는 게 문제일 수는 있다.

북오름의 '북'이 '밝'에서 기원한 것이고 그 뜻이 '높다'의 뜻이라면 제주도의 지명에서 흔히 보이는 '붉은오름'에 적용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붉은오름'은 '불은오름' 즉, 불룩한 오름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붉은오름'편을 참조하실 수 있다. 그런 것을 단지 ㄱ 혹은 ㄹ탈락 현상에 한정해 제시했다는 점에서 적절한 적용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외로도 이 오름이 주변 오름들에 비해 그다지 높은 오름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북 -', 산 사이의 바위 계곡

지명을 전문으로 다룬 책에서도 이 '북'이란 '밝'에서 기원한 지명이라는 부분을 인용한 예가 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런 견해에 대해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라고 부정해 버렸다. 이 말이 황당하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오름나그네의 저자는 성의를 다해 결론지은 것을 아무런 반론없이 단 한마디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고 부정해도 되는 것인가. 다른 의견을 부정하려면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제시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자기 견해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 말이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면 북처럼 생겼기 때문에 북오름이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인가?

김찬수

북오름이란 바위오름이란 뜻이다. 여기서 '북-'은 북방 제어에서 '작은 산' 등의 뜻을 갖는 '비케'를 공통조어로 분화한 어휘의 하나다. 돌궐어에서는 '작은 산'이라는 뜻과 함께 '정상이 바위로 되어 있는 산'을 지시하는 '북테르'로도 분화했다. '북돌아진오름'편에서 참조하실 수 있다. 이 말에는 '작은 산'이라는 뜻과 함께 '바위'라는 어감이 강하게 배어 있다. 돌궐어권의 오이라트어와 투바어 등 일부 언어에서는 '산 사이의 계곡'을 지시하기도 한다. 북오름이란 바로 이곳에 발달한 북오름 굴이 지명 기원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북오름굴이란 천연기념물 제552호 거문오름동굴계의 일부로서 여러 오름 사이를 휘돌아 흐른 굴이다. 북오름의 남서쪽에는 그 일부가 노출되어 마치 바위 계곡처럼 보인다. 북오름이란 바로 '산 사이 바위 계곡이 있는 오름'을 지시한다. 돌궐어 기원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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