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두어 달 전쯤 '탐나는 5060 인생학교'를 운영하는 평생교육진흥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만덕양조장에서 막걸리 빚기 현장 체험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그간 도내외 기관, 단체, 가족 단위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규모 방문, 견학 프로그램 정도는 진행해 봤지만, 협소한 양조장 형편 탓에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수락했다.
그렇게 약속한 일정은 다가왔고, 전날부터 주민들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술 익는 양조장을 피해 좀 더 넓은 건입마을조합 회의실에 임시 교육장을 마련했다. 전통주 학교를 운영할 때 사용했던 기자재를 꺼내놓는 것부터 미리 쌀을 씻고, 불려 놓았다. 만덕양조 창립부터 만덕7 막걸리 출시까지 지난 일 년간 발자취도 꼼꼼히 준비했다.
교육 당일, 이른 시간부터 건입동을 찾은 35명의 수강생들은 모슬포에서부터 건입동 인근에 사는 이 까지 다양한 지역 출신이었다. 전직 공무원, 사회단체 대표, 경력 단절 여성 등 살아온 이력은 달라도 대부분 50대~60대 중장년이었다. 마을기업 만덕양조가 걸어온 길을 경청하는 그들의 눈에는 진지함이 묻어났고, 고두밥을 식혀 누룩 입힌 술밥을 술독에 옮겨 담을 때는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특히 막걸리 빚기 체험 교육에서 놀라웠던 것은 보조강사로 참여한 중장년 주민들의 성취감과 자신감이었다. 체험 프로그램을 상설적으로 운영해 보자고 제안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전통주 교육을 받고, 생산·유통에 뛰어든 주민들 스스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주위에 퇴직을 앞둔 중장년들이 많다. 종종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끼는 건, 노년보다 중장년이 더 불안하다는 사실이다. 제주도 전체 인구 중 40% 이상이 중장년이며, 그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중장년을 위한 일자리나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해 여러 가지 정책들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중장년 지원 조례와 계획을 만들고, 매년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도 중장년을 복지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교정되지 않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중장년은 청년과 노인 사이에 끼인 세대다.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고, 정책은 단편적이다.
이제는 청년 문제 못지않게 중장년 문제에도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처럼 상담부터 교육, 커뮤니티, 새로운 일자리 등을 통합 지원하는 원스톱 체계가 필요하다. 일자리, 복지, 여성 등으로 산재한 중장년 정책 부서의 통합 운영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인생과 술은 참 많이 닮았다. 참고, 기다려야만 제대로 된 맛이 난다. 100세 시대, 중장년은 이제 새로운 자기 인식으로부터 시작해 치열한 고민과 모색을 거쳐 스스로의 전환점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 길을 주체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은 결국 중장년 당사자 자신의 몫이다. <김명범 행정학박사·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