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낮춰 살아온 쑥부쟁이 닮은 제주 해녀 어머니

몸 낮춰 살아온 쑥부쟁이 닮은 제주 해녀 어머니
한라 신춘문예 출신 고혜영 시조집 '미역 짐 지고 오신 바다'
일흔 해 물질 어머니 위해 섭지 바다가 빚어낸 노래들 담아
  • 입력 : 2020. 12.29(화) 18:37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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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태어난 곳은 부산 기장이다. 출향 해녀였던 어머니가 '원정 물질' 갔다가 1950년대 후반 기장에서 그를 낳았다. 유년의 기억은 기장을 떠나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마을이 채우고 있다. 시인의 어머니는 신양에서도 물질을 이어갔고 나이 아흔이 되던 3년 전에야 '은퇴'했다. 어머니가 70년에 걸친 자맥질을 멈추자 그는 비로소 해녀의 생을 노래했다. '언제부터인가 그 섭지 바다가 삼장 육구 시조 정형률로' 울렁이기 시작했다는 '시인의 말'에서 짐작하듯, 어느 순간엔 세상에 나와야 할 시였다. 고혜영 시인의 신작 시조집 '미역 짐 지고 오신 바다'(한그루 출판사)에 그 사연이 있다.

'촐래 반 모래 반으로/ 밥 한 상을 차리는 아침'('내 사랑 섭지코지')으로 열리는 시편들은 섭지코지가 있는 신양에서 시작해 신양으로 끝이 난다. 어머니를 통해 해녀의 세계로 들어간 시인은 고달팠던 추억들을 더듬으며 섭지코지 바위 틈에서 몸을 낮춰 살아가는 쑥부쟁이의 노래를 들려준다.

고혜영 시인

해녀들은 '울멍실멍 바당 물에 목심 바쳥' 살아왔다. '문화유산 등재되언 지꺼짐이 혼 망사리'('바다 사투리-'해녀' 세계문화유산 등재')라고 노래했으나 그들의 고단한 생이 그것으로 위안이 될까 싶을 정도다. '관절염 굽은 다리가 미역처럼'('먼 길 돌고 돌아') 말라도 어버이날 카네이션 달고 바다로 나가는 그들이다. 바닷물에 눈물을 씻어내야 하는 물질의 고통을 여식과 나누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오늘도 딸에게 "고맙다"는 말만 한다. 시인은 바다에 든 어머니의 안녕을 빌며 '신양리 물질 바당이/ 부처 얼굴/ 이더라'('부처님 오신 날에')라고 했는데, 이 땅의 석가모니는 다름아닌 해녀라는 이름의 어머니들인지 모른다.

30년간 농협 직원으로 근무했던 고혜영 시인은 2016 한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조시인으로 등단했다. 앞서 '하나씩 지워져 간다'는 시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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