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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윤의 월요논단] 2.28소설의 번역을 기대하며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입력 : 2020. 1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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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에 이웃마을 총각과 결혼을 앞둔 19세 처녀가 있었다. 1947년 봄날 어머니를 따라 혼수를 장만하러 나간 그녀는 신접살림용 식칼을 사서 가방에 넣은 직후 영문도 모른 채 난리 속에 휘말리면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쫓고 쫓기는 패거리들의 싸움에 휩쓸려 옷과 식칼에 피가 묻은 상황에서 붙들린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그녀는 식칼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냐고 추궁당하며 고문에 시달렸다. 그렇게 1년 수감생활을 하다가 총살되기 직전에 석방되지만, 귀가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아버지의 죽음과 정치범이라는 죄명이었다. 이웃마을 총각의 아버지는 파혼을 통보해왔고, 그녀는 감옥과 형장의 충격으로 온종일 중얼거리다가 밤중에 쏘다니곤 했다. 사태 10년 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점점 미친 여자가 돼버린 그녀는 1967년 여름날 급기야 철로 위에 서서 달려오는 기차를 맞이한다.

이는 타이완 작가 린솽부가 198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황쑤의 작은 연대기’의 내용이다. 타이완 현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주인공 황쑤가 휩쓸린 사건은 바로 '2.28항쟁'이었다. 장밋빛 희망으로 충만하던 여인의 삶이 우연히 맞닥뜨린 사건의 와중에서 항쟁을 진압하는 거대한 폭력에 의해 나락으로 끌어내려짐으로써 처참히 파멸돼버린 것이다. 타이완 민중의 수난과 억울한 희생의 문제가 인상적으로 부각된 작품이다.

나는 공동연구진의 일원으로 ‘역동하는 섬의 상상력: 오키나와.타이완.제주 소설에 나타난 폭력과 반(反)폭력의 양상’이란 논문을 준비하면서 이 소설을 겨우 읽었다. 이 작품이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인에게 번역을 부탁해 읽느라고 진땀 뺐던 기억이 새롭다. 4.3소설과 오키나와전쟁소설 그리고 2.28소설을 비교 고찰하는 과제가 연구진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으므로 어느 하나를 빼놓은 채 논문을 작성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2.28소설의 국내 번역이 전무함에 크게 놀랐다. 근래에 활발히 소개되는 오키나와전쟁소설만큼은 아니어도 다소는 번역됐으리라 여기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중국문학 연구자에 의해 관련 논문이 몇 편 나오고 작품목록도 정리됐지만, 번역된 소설은 단 한 편도 없었다. ‘비정성시’란 2.28영화가 한국에서 널리 상영됐어도, 여타 타이완 소설이 더러 번역되긴 했어도, 2.28소설은 번역 작품을 찾을 수 없었다. 실로 충격이었다.

문학작품의 번역은 매우 중요하다. 김석범의 일본어소설 ‘화산도’가 2015년 완역된 후에 얼마나 많이 읽히고 관련 논문이 나오고 있는가. 메도루마 슌, 마타요시 에이키, 오시로 사다토시 등의 오키나와소설들도 계속되는 번역에 힘입어 적잖이 회자되고 있음이 현실이 아닌가. 우리는 그러한 작품들을 접하면서 4.3 인식의 폭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동안 4.3과 관련하여 2.28에 대한 관심이 적잖았다. 비교연구도 진행되어 왔고, 교류도 있어왔다. 제주4.3평화재단에서도 교류 행사를 여러 차례 가진 것으로 안다. 앞으로는 2.28문학 번역 사업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제주에 관련 학과와 전문가들이 여럿 있는 만큼 4.3평화재단에서 번역지원에 적극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김동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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