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한라시론] 오등봉공원 사라지나

[이영웅의 한라시론] 오등봉공원 사라지나
  • 입력 : 2020. 05.28(목)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시내 오름 중에서도 오등봉은 야트막한 높이에 고운 잔디로 덮여 있어 학교 소풍이나 단체·모임의 들놀이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정상에 오르면 제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조망도 사람들의 발길을 잇게 했다.

생활환경의 변화로 오등봉을 찾는 탐방객은 줄어 옛 추억의 사진으로 남았지만 오등봉은 여전히 제주시내 자연경관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는 제주시내 건물들과 개발행위에 맞서 그나마 도심지 생태계를 지키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오등봉 일대 도시공원으로 지정된 오등봉공원이 오는 7월이면 전면해제가 되고, 1630세대의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도시공원 일몰제 대책의 하나로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을 추진해 도시공원 일부를 민간이 개발하고, 나머지는 공원으로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지난 2000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20년이 넘도록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은 경우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도록 만든 규정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도시계획시설을 지정해 놓고 보상 없이 장기간 방치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촉발됐다.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일몰제 기간인 2020년 7월 전까지 공원 조성을 서두르고,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응한 정책수립이 요구됐었다. 해제되는 공원의 사유지를 매입하기 위한 재정확보 방안도 뒤따라야 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방관만 할뿐 20년이라는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말았다.

그러면서 도시공원 일몰 기한이 닥쳐서야 내놓은 정책이 바로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이다. 민간사업자가 도시공원을 매입한 후 30%까지는 개발하고, 나머지 70%는 공원을 조성해 기부체납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도시공원이 해제돼 공원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그나마 70%는 공원으로 유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간특례사업을 먼저 진행하고 있는 타 지역의 상황을 보면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사업자들은 도시공원 면적 30% 내에서 최대의 개발이익을 얻기 위해 30∼4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를 계획하기 일쑤다. 기부체납 대상인 나머지 70%의 공원은 자신들이 지은 아파트의 원활한 분양을 위해 아파트 내 공원처럼 홍보하고 입주자 이용시설로 계획하기도 한다. 공익적 가치와 기준은 상실된 채 또 하나의 막개발 사업이 도심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오등봉공원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제주도는 민간특례사업 우선협상자로 호반건설을 선정했다. 제주시의 상징 하천인 한천 바로 옆으로 도내 공동주택으로는 최고 높이의 15층 아파트들이 건설될 계획이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 이들 건물이 들어설 경우 한라산 조망은 물론 주변 오등봉과 민오름 등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제주도 경관관리규정은 있으나마나다. 더욱이 이곳이 이처럼 개발된다면 애조로 위로 도시가 확장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도심지의 막힌 숨을 뚫어 주던 도시공원마저 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등봉공원의 낭랑한 새소리와 한천 계곡의 바람소리가 오늘따라 생생히 귓가를 스친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712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