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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60)이덕구(김규중)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5.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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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았는가

빨갱이 제주민중은 경계하라고

관덕정 허공에 걸려놓은 모가지야

볼 수 없는 눈동자야

무엇을 보았는가

공포의 그림자 짙게 드리우는 그들의 눈망울을

메마른 땅 위에 스미는 너의

핏방울을

보았는가

가슴팍 주머니에 달랑 꽂혀

있는 숟가락아

무엇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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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구(李德九)는 남로당제주도지부 군사부장이며 김달삼에 이은 제2대 인민유격대장이다. 조천읍 신촌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의 리쓰메이칸 대학(立命館大學) 경제학부 재학 중 1943년 학병으로 관동군에 입대했다. 1945년 귀향한 뒤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체육을 가르쳤다. 얼굴은 살짝 곰보이며 미남형이다. 늘 목소리가 컸으니 이는 미군정에 의해 구인(拘引)되어 고문을 받을 때 고막이 파열되어 귀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김달삼(金達三)이 1948년 8월 21일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하러 간 뒤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군사부장과 제주도 인민유격대 사령관 직책을 이어받았다.

이덕구가 지휘하는 유격대 주력부대는 토벌대를 포위해 기습 공격하고 제주읍을 급습해 도청을 방화하고 지서를 습격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토벌대의 대공세 이후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무장 대원도 100여 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결국 1949년 6월 경찰과 교전을 벌이다 최후를 맞았고 1949년 6월 7일 16시 화북지구 제623고지에서 경찰과 교전하다 사망하였다. 제주경찰서 화북지서 김영주 경사가 지휘하는 경찰부대는 작은가오리 부근 정글 속에서 이덕구 부대와 교전 끝에 이덕구를 사살하는 한편 그의 보신부하까지 체포하였다. 이덕구 일가족 대부분이 희생되었다. 부인 양후상과 다섯 살 아들 이진우, 두 살 딸도 죽었다. 큰형 이호구의 부인과 아들, 딸, 둘째 형 이좌구의 부인과 아들, 사촌 동생 이신구, 이성구 등도 경찰에 의해 죽었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 관덕정 앞 제주경찰서 정문 입구에 그의 시신을 걸쳐 세워 전시하였다. 북한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회에서는 그에게 국가훈장 3급을 서훈(敍勳)하였다. 북한은 애국열사능(愛國烈士陵)에 그의 묘비를 건립하였다.이덕구 산전은 사려니 숲길을 통해 찾아들어간다. 그 샛길을 따라가다 만난 표지판, "…주민들은 은신하기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 더욱 산 속 깊이 들어갔으며 이곳 '시안모루', '북받친 밭'까지 와서 은신생활을 했었다. 이곳은 피난 주민들이 떠난 1949년 봄 이후에는 무장대 사령부인 이덕구 부대가 잠시 주둔하기도 했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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