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있는 풍경/ 문학 도시를 가다] (1) 연재를 시작하며

[문학이 있는 풍경/ 문학 도시를 가다] (1) 연재를 시작하며
미증유 감염병 사태가 부른 성찰의 여정, 문학으로 걷자
  • 입력 : 2020. 04.22(수)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새로운 삶의 방향 모색하는 길에
억압의 존재 일깨우는 문학의 힘
도서관·문학단체·행사 등 다수
차고넘치는 자원으론 '문학의 섬'
시설 조성 넘어 일상의 문학돼야





"문학은 억압없는 쾌락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서 그것은 그것을 읽는 자에게 반성을 강요하여, 인간을 억압하는 것과 싸울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이런 수모와 아픔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것을 안 당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느끼게 한다. 인간은 이래야 행복하다, 그러니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서귀포칠십리시공원. 서귀포를 노래한 국내 유명 시인들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생전에 썼던 글의 한 대목을 옮겨놓는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에게 던진 숙제 중 하나는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일이다. 문학은 그같은 성찰과 반성으로 가는 길에 놓인 유용한 도구가 아닐까 싶다. 다시 김현의 글을 인용하자면,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지역적·역사적·인문적 특성을 살리고 자율과 책임, 창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제주특별자치도'를 표방했을 때, 문학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같은 삶의 무늬에 다가서있다. 제주의 오래된 역사와 인문을 글감 삼아 이 땅에 감도는 수많은 감성들을 개개의 작품에 녹여온 게 문학이었다.

제주는 문학을 이야기하는 시설 등 숱한 자원이 흩어져 있는 곳이다. 인구 수 대비 전국 상위를 달리는 공공도서관을 보유하고 있고 문학 단체, 문학 행사도 갈수록 그 양이 늘어나고 있다.

문학단체만 해도 1956년 발족된 문총 제주지부의 제주문학 동호인회에 모태를 둔 제주문인협회가 1962년 1월 탄생했다. 1998년 창립 이래 제주4·3을 중요한 문학적 화두로 삼아온 제주작가회의도 지역 문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국제펜(PEN)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도 꾸려졌다.

'혼불'을 남긴 최명희 소설가를 기리는 문학관. 전주 도심 한옥마을에 들어섰다.

이들이 내는 기관지는 물론 제주에서 발행하는 계간 문예지 '다층'도 벌써 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제주4·3문학상, 제주문학상, 서귀포문학상 등도 제정 운영 중이다.

문학 행사도 풍성하다. 한국문인협회 서귀포지부는 해마다 '시로 봄을 여는 서귀포'를 열어왔고 서귀포예총은 김광협문학제를 치르고 있다. 제주문인협회, 제주작가회의, 제주문화원이 손을 잡은 전국문학인 제주포럼은 제주시 지원을 받아 지난해까지 3회째 열었다.

공공도서관을 기반으로 한 독서 축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동네책방, 지역출판사, 독서동아리 등이 참여하는 제주독서문화대전, 제주도교육청이 주관하는 '책들의 가을소풍', 서귀포시에서 펼쳐지는 서귀포 베라벨 책정원 축제 등이다. 제주독서문화대전의 경우엔 지난 개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독서대전을 유치해 9월에 신산공원과 문예회관 일대에서 책으로 즐기는 축제를 연다.

서귀포시 삼매봉 입구에는 제주올레길 코스에 포함된 서귀포칠십리시(詩) 공원이 있다. 2000년부터 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으로 추진된 서귀포칠십리시공원에는 서귀포와 관련된 시비 12기와 노래비 3기가 곳곳에 세워졌다. 시공원 말고도 서귀포 천지연 김광협시비 등 현존 작가까지 포함 구석구석 시비를 볼 수 있다. 애월리 한담 마을에는 대표적 해양문학 작품인 장한철의 표해록을 기리는 기념비도 설치됐다.

경남 통영시 박경리기념관 내부로 선생이 집필하던 강원도 원주의 서재를 재현해놓았다.

제주시 도남동 연북로변에는 2021년 개관을 목표로 제주문학관이 지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첫삽을 뜬 제주문학관은 2003년 제주작가회의 정책토론회를 통해 대외적으로 건립 필요성이 논의된 이래 17년 만에 현실화됐다. 제주시 건입동에는 제주문학관 개관에 앞서 제주문인협회와 제주작가회의가 공동운영하는 제주문학의집이 가동되어 왔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역출판진흥조례'가 제정된 곳도 제주다. 지역 출판사 역시 중요한 문학 자원이다. 제주 시내를 벗어난 읍면에 동네 서점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문학 축제, 기반 시설, 문학 단체 등 제주는 이미 '문학의 섬'이지만 그 말처럼 제주사람들의 일상에 문학이 얼마나 스며들고 있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적지않은 문학 자원들이 나홀로 존재하는 이유가 크다.

제주문학관이 들어서면 그같은 분위기가 바뀔까 싶지만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방문했던 전국의 문학관들이 모두 그에 대해 긍정의 신호를 보내준 것은 아니다. 일부를 제외하면 외로운 섬처럼 떠있는 공간들이 더 많았다.

극작가 김우진, 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차범석, 문학평론가 김현 4인관으로 꾸며진 목포문학관 입구 조형물.

서귀포의 시인 김광협을 생각해본다. '유자꽃 피는 마을'이란 이름 아래 서귀포 과원을 노닐고 시인의 고향 마을을 돌아보는 탐방이 있었던가. '백치 아다다'를 쓴 피난 문인 계용묵은 어떤가. 제주문인협회에서 표석을 세우고 '제주문학'에서 특집을 다룬 적은 있지만 그를 오늘날과 만나도록 이끌었던 자리는 없었던 것 같다. 계용묵이 드나들던 동백다방이 있던 제주시 원도심 길을 따라 옛적 문학청년들의 발자취를 그려보는 탐방이 있었던가.

제주에 산재한 시비(노래비)만 찾아도 의미있는 '문학축제'가 되지 않을까. 칠십리시공원만 해도 그 자체로 문학기행의 자산이다. 제주에 머물렀던 시인들이 노래했던 서귀포, 제주의 공간이 어디인지만 둘러봐도 '문학의 섬 제주'의 한 장면이 된다.

특히 제주의 삶과 풍경을 시나 소설 등으로 촘촘히 그려냈던 제주의 문학인들을 발굴하고 기리는 작업이 필요해보인다. 이즈음 제주 밖의 작가들이 제주로 와서 문학적 감동을 캐는 작업이 이어지기 전에 수십년 전부터 '제주'라는 글밭을 다져온 이들은 바로 제주의 시인, 소설가들이었다. 제주 문학의 가치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에 대한 자그만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글·사진=진선희기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337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