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인류학자가 촘촘히 걸은 1971년 제주

일본 인류학자가 촘촘히 걸은 1971년 제주
이토 아비토 도쿄대 명예교수 제주도 기증사진 700여 점 바탕
강경희 번역자 현장 조사 발품 우리말 해설 더한 자료집 발간
"새마을운동 이전 제주 전통사회 풍경들 민속·인류학적 가치"
  • 입력 : 2020. 03.03(화) 18:40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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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오라동 4H 구락부 표석. 이토 교수의 사진들은 1970년대초 새마을운동으로 소멸되기 이전의 제주 전통사회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70년대 초 지금의 제주시 원도심과 서부 지역을 주로 기록한 사진이 한 권의 자료집으로 묶였다. 제주연구원(원장 김동전) 제주학연구센터(센터장 김순자)가 제주학총서로 펴낸 '일본인 인류학자가 본 1971년 제주도'다.

이 사진집은 도쿄대 이토 아비토(伊藤亞人) 명예교수가 제주도에 기증한 소장 자료 700여 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마을별로 사진을 정리한 뒤 장소가 명확하지 않은 곳은 주제별로 편집했다.

1971년 도쿄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던 이토 교수는 현지 조사를 위해 그해 8~10월 약 3개월 동안 제주에 머물렀다. 그에게 제주 곳곳을 안내했던 이는 제주 민속학자 김영돈·현용준 선생이었다.

이토 교수가 제주를 방문한 배경엔 '제주도(濟州島)'를 쓴 이즈미 세이치가 경성제국대학 학창 시절에 착수했던 제주도 현지 조사를 끝으로 인류학적 한국 연구가 단절되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중국 사생여행을 가던 중에 제주도 앞바다를 지나쳤던 아버지에게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도 그를 제주로 이끌었다.

이토 아비토 교수가 머물렀던 한일여관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풍경. 한일여관은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칠성로 옛 제일극장으로 이어지는 샛목골에 있었다.

그의 발길은 칠성통(칠성로)을 시작으로 오라동과 오라1동, 용담동, 협재리, 이호리, 비양도, 대림리, 월령리, 옹포리, 광령리, 북촌리, 금능리, 판포리, 한림리, 수원리까지 닿는다. 돌 문화, 무속의례, 오일장, 추석, 장례, 당과 포제단, 민구 등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거센 변화가 일면서 가뭇없이 사라진 사물이나 풍경이 살아있다. 오라1동의 옛 이름을 딴 1956년 모오 부인친목계 규약, 집안 대소사를 상부상조하기 위해 부인들로 조직된 1949년 백미계 좌목, 문중 족보 등 마을에 전해오는 문서까지 살폈고 이토 교수 등 조사팀이 직접 그린 오라1동 마을 지도도 보인다. 이토 교수는 자료집에 부친 글에서 "과거 방문한 오라 1동을 비롯해 제주 돌담으로 둘러싸인 골목길을 마을에서 마을로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이토 교수의 기증 자료가 360쪽 분량의 사진집으로 재탄생하기까지 강경희 제주역사문화진흥원 연구원의 공이 컸다. 강경희 연구원은 번역에 앞서 일본에 있는 이토 교수를 만나 촬영 당시의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현지 답사와 지역민 인터뷰를 통해 사진에 대한 이해를 돕는 해설을 썼다.

비양도 해녀. 1971년에 이미 고무옷을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어 다른 해안 마을 보다 빨리 착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집은 제주학아카이브(www.jst.re.kr)에서 열람할 수 있다. 제주학연구센터 좌혜경 전문연구위원은 "70년대 초까지 남아있던 제주 전통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자료들로 인류학자로서 지역 연구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고 그 의미를 밝혔다. 비매품. 문의 064)747-6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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