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16)북촌리의 봄(박은영)

[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16)북촌리의 봄(박은영)
  • 입력 : 2019. 07.11(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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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의 젖을 아이가 빨고 있었다

말 못하는 어린 것의 울음이 서모(*서우봉)에서 부는 바람소리 같았다

핏덩이를 등에 업은 어미의 자장가가 들리는 듯한데

젖몸살을 앓던 아침, 붉은 비린내가 퉁퉁 불어 마을을 떠돌아다녔다 새들이 총소리를 물고 둥지로 날아갔다 소란스런 포란의 방향, 꽃을 내준 가지가 동쪽으로 기울었다

그것은 서쪽에서 해가 뜰 일

서모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말 못하는 어린 것의 울음 같았다

뚝뚝, 지는 목숨들 사이

아이는 나오지 않는 젖을 한사코 빨아대고 있었다

어미를 살려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그 힘으로 동백꽃이 피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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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북촌리의 봄'은 2014년 4·3평화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품이다. 시인 박은영은 수상소감에서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얼마나 몸서리치게 우셨습니까. 아직도 캄캄한 동굴 깊이 숨어있을 분들, 그 분들의 손을 잡고 함께 밖으로 나오고 싶었습니다"고 쓰고 있다. 1947년 8월 31일 불법 삐라를 단속하던 경찰관과 북촌주민이 충돌, 쌍방이 부상자를 낸 사건이 벌어졌다. 오전 11시께 경찰은 마을에서 삐라를 붙이던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 발포로 3명이 총상을 입었다. 1948년 5월 10일 오후 4시. 북촌투표소가 불에 탔다. 투표용지가 파손되었다. 1949년 1월 17일 마을 어귀에서 토벌대 2명이 무장대의 습격을 받아 숨졌다. 아침에 세화 주둔 제2연대 3대대의 중대 일부 병력이 대대본부가 있던 함덕으로 가던 도중에 마을 어귀 고갯길에서 무장대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마을 원로들은 숙의 끝에 군인 시신을 들것에 담아 함덕 대대본부로 찾아갔다. 군인들은 본부에 찾아간 10명의 연로자 가운데 경찰 가족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살해 버렸다. 그리고 장교의 인솔 아래 2개 소대 쯤 되는 병력이 마을을 덮쳤다. 그 때 시간은 오전 11시 전후. 군인들이 마을을 포위하고 집집마다 들이닥쳐 총부리를 겨누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학교운동장으로 내몰고는 온 마을을 불태웠다. 400여 채의 가옥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학교운동장에 모인 1000명가량의 마을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군인들은 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에 집결시킨 뒤, 주민을 20명씩 묶어 학교 동쪽 당팟과 서쪽 너분숭이 인근 옴팡밭으로 끌고 가 집단 총살했다. 주민학살극은 오후 5시께 대대장의 중지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4·3에 대해 30여 년간 망각과 침묵을 강요당하던 시절, 작가 현기영은 북촌리 대학살을 다룬 작품 '순이삼촌'을 197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면서 4·3을 시대의 한복판으로 끌어올렸다. 이 작품은 국가폭력의 실상을 폭로하고, 진상규명의 필요성 그리고 치유와 추모의 당위성을 널리 확산시키는 디딤돌이 됐다. 현기영 작가는 4·3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1979년 군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심한 고초를 겪었고 '순이삼촌'은 14년 간 금서가 됐다. 또 하나의 4·3 소재의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가 국방부의 불온도서로 선정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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