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운명(運命)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운명(運命)
  • 입력 : 2019. 06.05(수)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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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운명이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며 이 힘에 따라서 삶이 영위되는 것인가. 운명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라고 설명된다.

인간과 우주의 일체를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라는 필연적이고 초인간인 힘에 의한 것이고, 이 힘으로 사람들은 때로는 희망을 바라며 때로는 절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실로 운명이란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신앙하는 대단히 중요한 힘으로서 예로부터 종교와 신화, 철학과 문학의 중심사상으로 나타난다.

옛날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세 여신(女神)을 생각하였다. 인간의 탄생을 지배하며 생명을 관장하는 클로토, 인간의 일생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라케시스,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여 그 생명을 앗아가버리는 아트로포스가 그들이다. 그리스인의 신앙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운명을 주관하는 이 여신들의 손안에 있으며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은 함부로 변경시킬 수도 또 그것으로부터 마음대로 벗어날 수도 없다.

인간의 운명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초월적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하고 애써도 알 수 없는 엄청난 가공의 힘이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래서 연약한 인간은 절대 존재인 하느님을 찾아 종교에 기대기도 하고, 인간 의지를 포기하고 '체념'에 빠져 살기도 한다.

세상만사가 미리 정해진 필연적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상을 운명론 혹은 숙명론이라고 한다. 운명론의 특징은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논리적인 인과관계 같은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점에 있다. 운명론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미리 정해진 날에 죽도록 운명 지어 있어서 사전에 아무리 주의나 노력을 기울여도 자신에게 닥친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운명이 어떤 전능의 힘을 가지고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는 사상은 철학과 문학 속에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운명을 문학적으로 다룬 작품은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19세기 영국 작가 토머스 하디의 '테스'라는 작품을 기억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테스라는 순진무구하던 시골 처녀가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에 의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결국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는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문학작품에서뿐 아니라 실제 삶에 있어도 때로 우리에게 닥치는 엄청난 비극적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다. 더욱이 인간 삶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순간에 다가오는 '우연'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알 수 없이 다가온 우연은 인간과 세상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기도 한다. 한순간의 우연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완전히 갈라놓는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인가.

멀리 동유럽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여행하던 사람들에게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국내도 아닌 외국에서 그것도 백 년 만에 생겼다는 사고가 하필 그 배였다는 비극적 운명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가 빨리 지나가고, 부디 천사 같은 밝은 운명이 나타나 모든 것을 회복해주기를 빌어본다.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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