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의 현장시선] 다양성과 평등의 가치, 가족에서 시작된다

[이은희의 현장시선] 다양성과 평등의 가치, 가족에서 시작된다
  • 입력 : 2019. 05.10(금)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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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저출산). 유아차(유모차), 비혼(미혼).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시민들이 제안한 '성평등 언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은 결혼, 출산, 육아와 관련된 용어로 모두 여성과 연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아기를 적게 낳는다는 뜻인 저출산(低出産)이라는 언어는 인구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으므로 아기가 적게 태어난다는 뜻의 저출생(低出生)으로, 유모차(乳母車)는 부(夫)를 배제한 언어이므로 유아차(乳兒車)로, 미혼(未婚)은 결혼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가 명확하게 나타나는 비혼(非婚)으로 바꿔 쓰자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시민들의 인식변화는 우리사회의 저출생, 고령화, 돌봄의 공백 현상에 직면하여, 돌봄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여성과 개별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개념 또한 변화하고 있다. 우리사회에 널리 펴져 있는 일반적인 '가족'의 개념은 혈연과 혼인을 특성으로 하는 '정상가족'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기존에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여겨졌던 부부중심의 핵가족은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실제로 한국사회의 가족(가구)은 부부중심의 핵가족의 비율이 줄어드는 반면 단독가구, 한부모가족, 조부모가족, 기러기가족, 국제결혼가족, 동거가족 등이 증가하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제주지역의 경우 전국과 비교하여 한부모, 조손가족, 1인가구, 비혈연가구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가족의 출현은 가족의 '위기'가 아닌 '변화'와 '다양성'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가족이 곧 비정상적인 가족이라는 인식을 경계하고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보호'가 필요한 가족의 지원을 넘어서 다양한 가족생활을 할 수 있는 문화적, 법적,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함은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는 기존의 소위 '취약가족'이라 불리는 특정 가족에 대한 잔여적 복지정책에서 성평등하고 보다 나은 삶의 질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보편적 가족정책으로의 정책 패러다임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의 다양성과 평등의 가치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연령과 성별, 가족유형을 포괄함으로써 다양성이 발현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한 지향이 필요하며, 이에 대해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정책적 고민과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의 활동을 통해 여성의 역량이 강화되고 실질적으로 제주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성평등 돌봄공동체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항상 5월이 되면 가족의 가치에 대한 강조가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이 특정 성별이나 가족에게 부담이나 상처를 주는 방식이 아니길 바란다. 올 해 5월은 다양성과 평등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감하고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은희 제주여성가족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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