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봄풍경에 어른거리는 그날의 흔적

제주 봄풍경에 어른거리는 그날의 흔적
경기 부천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5월 8일까지 양동규전
  • 입력 : 2019. 04.29(월) 18:48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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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규의 '빈땅'

그의 할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제주4·3 당시 토벌대가 앗아간 목숨이었다. 살아남은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했지만 평생 가신 이를 그리워했다. 아들의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일찍이 4월의 아픔을 알았으리라. 그가 카메라를 메고 때때로 홀로 4·3의 현장을 누벼온 이유도 가족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제주 사진가 양동규씨다.

그가 2010년대 들어 작업한 작품을 중심으로 경기도 부천에 있는 대안공간 아트포럼리를 찾았다. '섬, 썸'이란 이름이 달린 전시로 시각 예술을 통해 70여년 전 제주섬에서 벌어진 '어떤 일'을 뭍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양 작가의 작업은 4·3에서 오늘날 제주 생태까지 다다른다. 과거의 풍경이 그저 한 시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XX를 위해 세운 공로'는 누군가의 두개골을 관통했을 총알과 그 죽음 '덕'에 받았을 훈장이 나란히 배치됐다. 피비린내나는 학살은 우리네 삶을 그렇게 찢어놓았다. 15컷으로 구성된 3m 길이의 대작인 '빈땅'은 정뜨르비행장 유해발굴을 위한 사전 측량 모습을 담아냈다. '미여진 뱅뒤의 하늘' 역시 3m 크기의 작품으로 도두리와 선흘리 유해발굴 현장을 기록했다. 수십 년 세월이 흘러 뼈조차 사라지고 없는 그곳에 작가는 구천을 헤매는 원혼을 달래듯 나부끼는 만장을 날린다.

새별오름 들불축제가 끝난 뒤 검게 탄 오름을 잡아낸 '연상', 숲 속에 떼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한 '겹쳐진 풍경'은 제주 땅 어느 곳 4월의 넋을 품지 않은 데가 없음을 새삼 일깨운다. 한라산, 채석장, 곶자왈 나무뿌리 등을 통해선 생태에 가해지는 폭력과 그걸 딛고 일어서는 생명의 경이로움('어이없는 현상에 대한 투쟁')을 드러낸다.

전시는 5월 8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32)666-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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