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느림의 미학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느림의 미학
  • 입력 : 2019. 03.27(수)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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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식당에서 직장에서 공항에서 어디서나 '빨리'를 외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고 느리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뒤떨어지거나 시대에 쳐지는 거로 생각한다.

우리는 늘 시간과 일에 쫓기며 바쁘게 살고 있다. 약속 시간을 놓칠까, 기한 내에 일을 처리하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며 살아간다. 우리들이 빠름만을 추구하는 데는 초고속의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치열한 경쟁 사회가 조장된 덕분에 나타난 현상이지만, 그렇다 보니 일상 속에서 마음의 여유는 사라져 버리고 삶은 치열한 쫓고 쫓김의 연속이다. 마음의 여유로움이나 너그러움은 잃어버린 지 오래다.

어디에서나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사람에 대한 배려는 물론 세상과 자연을 되돌아볼 시간도 가지지 못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커녕 '너'도 '우리'도 없고 오직 '나'만 있게 된다. 여유란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시작되며, 느림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그러기에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 시간이 멈춘 곳에서 자신과 세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손쉽게 하루쯤이라도 차를 몰지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라. 자동차를 직접 운전할 때 보지 못한 주변 풍경들이 하나하나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어딘가 숲길을 산책해 보라. 봄날을 맞아 산과 들에서는 새롭게 피어난 꽃과 나무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그들은 나에게 소곤소곤 말을 걸어오고, 나도 그들의 지난 겨울이야기를 들어준다. 흙도 밟고 바람 내음도 맡고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은 나와 세상을 끈끈히 연결해 준다. 이때에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빠름의 미학은 우리에게 자연친화적인 삶을 불가능케 한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느린 것과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한다. 파종하면 농약을 치고 성장촉진제를 사용해서라도 금세 수확을 해야 하고, 자동차가 다니기 불편한 길이 있으면 수백 년 된 나무를 잘라내고 길을 만들어야 한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 삶에 순응하는 기다림의 미학이 없다. 인간의 영원한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연 회귀적 열망은 갈수록 사라져 가고 있다. 인간이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 사실이 망각되고 있다.

일찍부터 느림의 삶을 강조한 사람들은 많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안에 들어앉아 명상할 줄 모르는 것"이라 하였다. 느림은 빠른 속도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며,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와 계절을 아주 천천히 아주 경건하게 주의 깊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느리게 살면서 현재의 삶을 음미하고 충분히 즐기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보고 듣고 느껴야 할 것이 많은 곳이다.

빠름은 기계의 시간이며, 느림은 자연의 시간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초고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의 광기를 제어할 대안적 삶으로, 자연 친화적이며 인간다운 삶을 의미한다. 이는 자본주의 논리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고 작은 것, 느린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삶이다.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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