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의 현장시선]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김경미의 현장시선]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 입력 : 2018. 02.09(금)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요즘 제주는 온통 눈이다. 문밖으로 보는 세상은 환상적이나 나처럼 이동제약이 큰 중증장애인에게는 뜻하지 않은 휴일을 맞이하게 된다. 눈이 오면 떠오르는 어린 시절 기억이 있다.

오늘처럼 창문 너머 눈 구경을 하고 있는데, 눈싸움하는 친구들 모습이 부러워 엄마에게 떼를 써, 밖에 나가서 신나게 눈싸움을 했다. 친구들은 어떤 편견도 없이 비닐포대에 앉아 기어오는 나를 반기었고, 편을 나누어 눈 뭉치를 던지면서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아직까지 재미있게 놀았다는 기억보다 다음부터는 눈싸움하러 나가지 않겠다며 울었던 기억이 더 크다. 내가 도망가지 못해서 눈싸움에 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친구 엄마들이 "너도 눈싸움하러 나왔냐"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린 나는 무언가 잘못 한 기분이 들었고, 친구들도 내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고…. 비닐포대에 멍하니 앉아 젖은 바지의 찬 기운이 가슴까지 시리게 전달되어 서글프게 울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첫 사회생활이라 잔뜩 긴장하여 옷을 갖춰 입었던 기억이 있다. 치마도 나의 의복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2년 만에 제주에 내려와 무릎 위 길이의 치마를 입고 밖을 나갔더니, 같은 장애인이 나에게 말한다. "다리가 불편한데, 어떻게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왔냐고, 용기가 대단하다고…." 그 후로 나는 치마를 입을 적마다 내 다리를 보게 되고,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서 차츰 치마를 입지 않게 되었다.

장애 현장에서 이런 일을 나만 겪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주 듣는 말이 '장애 적응(適應)', '장애 순응(順應)' 이다. 대학교수이면서 장애를 가진 졸라(Zola) 박사는 "나는 적응과 순응에 대한 우리의 저술과 연구가 얼마나 빈약한지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성장기가 끝나고 성숙기가 시작되었다거나 특정한 고통에 대한 적응과 순응에 성공하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다수 문제에서 혹은 대다수 기본적 삶의 이슈에서, 그러한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되고, 평가되어야 하고, 다시 정의되어야 하고, 다시 수용되어야 한다"며, 적응과 순응이 해결 방안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장애에 대한 적응과 순응을 암묵적으로 강요받고 있다.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장애로 인해 내 삶의 일상이 부정적 시각으로 조명(照明)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보통사람으로서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며, 장애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여 비통하게 일상을 보내고 싶지도 않다.

최근에 발간된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라는 책은 휠체어를 탄 여성장애인과 비장애 남성 연인과의 유럽 여행기이다. 그들은 "한국에서는 호기심, 친근감이라는 가면을 쓰고 반말로 질문 세례를 받았는데, 영국에서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느낌, 더없이 자유롭고 홀가분해졌다"면서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소회(所懷)를 밝혔다. 여행을 가고, 짧은 치마를 입고, 목표에 도전을 하고, 엄마·아빠가 되고, 연애를 하는 이런 평범한 일상이 시선의 억압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해석된다면 결국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된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장애 극복'이라는 단어에 대한 저항도 장애에 대한 부정적 함의(含意 ) 때문이다.

'시선으로부터 자유'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날 때 "용기는 장애를 극복하는데 쓰일 게 아니라 꿈을 꾸는데 쓰여야 한다고 가우디가 내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는 책 본문처럼 꿈을 꾸고, 꿈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경미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15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