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슬픈 제주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슬픈 제주
  • 입력 : 2017. 08.02(수)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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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의 하나로 불리고 있고 화가 고갱이 그토록 사랑했던 타히티 섬, 서양사에서 가장 오래된 미노아 문명의 탄생지인 그리스의 크레타 섬, 이런 섬들은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아름다운 풍광과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관광객을 맞아준다. 필자가 어렵사리 찾아갔을 때도 독특한 자연과 삶의 모습을 있는 대로 간직하면서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뿐인가. 영국의 대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를 탄생시킨 아름다운 호수와 산과 강이 어우러진 레이크 디스트릭트(호수지방)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원래의 모습 그대로이고, 섬나라인 호주와 뉴질랜드는 하나의 건축물과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수차례의 공공위원회를 열어야 할 정도로 도시 곳곳은 엄격하게 보존되고 있다.

이에 반해, 지금 제주도는 하루가 다르게 너무나 많이 변하고 있다. 곳곳에서 바다와 오름은 허물어지고 곶자왈과 시골은 파괴되고 있다. 한라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비양도에 삭도를 만들기 위해 애쓰던 사람들이, 이에 실패하자 이제는 풍광 좋은 바닷가와 중산간도로에 국내외 자본을 끌어들여 대규모 위락단지를 만들기 위해 난개발을 하고 있다.

제주는 지금 개발의 광풍으로 인해 생사기로에 놓여 있다. 풍경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골프장과 리조트를 위시한 위락시설이 괴물같이 건설되는가 하면 심지어 곳곳에 무인모텔까지 들어서고 있다. 제주 구석구석에서는 숲과 나무가 없어지고 건물과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한번 처참하게 파괴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은 다시는 복구될 수 없고 다시는 볼 수 없다. 제주는 누가 함부로 훼손할 수 있게 허가되는 물건이 아니다.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선조와 후손들을 위한 공동의 유산이다. 지금 제주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제주의 자연과 생명을 보호하겠다는 최소한의 철학과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주의 푸른 바다는 제주인의 피와 같고, 곶자왈은 허파와 같고, 오름은 정신과 같다. 제주 바다와 곶자왈과 오름은 삶의 터전이었고 동시에 인간다운 감수성을 키워주는 원천이었다. 이들을 버린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을 버리는 거와 다를 바 없다. 도대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멋대로 파헤치고 함부로 갉아 먹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인간 정신의 회복이다. 자본과 개발의 논리가 일상화된 탐욕과 이기심과 경쟁의식에 찌든 '야만의 길'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다운 품위와 존엄성으로 무장한 '인간의 길'을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유린하고 왜곡하고 있는 경제논리와 개발논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 광란에 가까운 개발 논리가 제주경제를 위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가 얻는 것이 단기적이고 작은 경제적 이익일지 모르지만, 더 크게 잃는 것은 우리들 자신은 물론 다음 세대들의 생명과 생존의 근본적인 토대이다.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자연이 인간의 소유물일 수는 없다. 자연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공존의 터전이며 미래의 후손들을 위한 자산이다. 최소한 진정으로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이 자연에 대해서 가지는 사랑과 겸손의 마음이다. 인간이 자연을 자신들의 소유물로 착각하고 무분별하게 훼손하고 개발하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위기상황을 낳게 된 것이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개발의 논리에 의해 신음하고 있는 제주는 지금 한없이 슬프다.<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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