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기다려주는’ 대통령, 그리고 부모와 스승

[백록담]‘기다려주는’ 대통령, 그리고 부모와 스승
  • 입력 : 2017. 05.22(월) 0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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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뉴스를 켜면 '문모닝'하고 인사를 하듯, 낯설고 새롭고 신선하고 따뜻한 뉴스가 아침밥상에 오르게 되는 요즘이다. 인사를 직접 발표하고 기자들에게 "질문 있으십니까?"라고 묻는 대통령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흐믓하고, 미리 나와 야당대표들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치게 된다. 5·18 기념식에서 유족을 안아주며 눈물 흘리는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살피게 된다. 손잡고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는 4·3기념식에서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함께 부르는 대통령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줌마기자'가 가장 가슴 뜨거워졌던 장면은 초등학교 아이가 사인할 종이를 찾는 동안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기다려주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그 장면이 얼마나 의미로운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다림이었는지 기억할 것이다. '기다려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부모와 스승은 알고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오래전 일이 떠올라 울컥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많은 것을 챙겨주는 어린이집을 거쳐 입학한 초등학교는 아이에게 너무 새롭고 두렵고 큰 공간이었을 터였다. 학교에서 숙제라는 것을 냈고 아이는 정성껏 숙제를 마쳤다. '워킹맘'이었던 기자는 아이에게 늘 '알아서 할 것'을 강조했다. 혼자 가방을 쌌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그날, 참혹한 표정을 지었다.

'숙제검사 시간' 선생님은 숙제를 하지 못한 아이는 손을 들라고 했던 모양이다. 아이는 손을 들지 않았고 가방에서 숙제한 것을 찾으려 했지만 그 공책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당황해서 더 정신없이 가방을 뒤졌지만 야속하게도 공책은 책 사이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사이 숙제검사에 나선 선생님은 숙제를 책상에 올려놓지 못하고 손도 들지 않은 아이에게 매를 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그 반에서 처음 매를 맞은 아이가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입학후 첫 상처는 컸다. 그리고 집에 와서 가방을 여니 그 공책은 책 사이에 들어가 몸을 감추고 있었다. "선생님이 무섭게 쳐다보시는데 가방을 아무리 뒤져도 이 공책이 보이질 않는거야, 엄마." 울먹이고 있었다.

그 기억은 지금도 아프다. 아이에게는 "그러니까 좀 더 잘 챙겼어야지"라고 말했지만 마음 한켠에 미안함과 아쉬움과 섭섭함이 밀려왔다. '숙제를 해왔다는 아이가 가방을 뒤질 때 함께 찾아주거나 따뜻한 시선으로 기다려줄 수는 없었을까? 그 공책을 찾아서 얼마나 당당히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래서 어렵게 사인받을 종이를 찾아낸 그 아이와 '기다려주는 대통령'의 사진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이는 대통령에게 '사람이 먼저다'라는 사인을 받았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명언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기다려주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본다.

'기다려주는 대통령' '기다려주는 선생님'을 원하면서 나 자신은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어주고 있는가. 바쁘다는 말을 달고 늘 재촉하고 있다. 마음과 행동이 제각각이어서 순간순간 놀라게 된다. 얼마전 하루종일 누워서 뒹구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화내지 않고 기다려주고 존중해주는 엄마는 '친구 엄마' 이야기일거야."

'조급증'이 가득한 부모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너무 바쁘게 살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주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험한 세상 미리 좀 살아보았다는 이유로 쉽게 이야기 하지 말자고, 좀더 기다려주자고 말이다. 이렇게 눈높이를 맞추고 기다려주는 대통령과 스승과 부모를 기억하는 아이들이 꿈꾸고 만들어가는 미래는 얼마나 희망적일까. <이현숙 서귀포지사장·제2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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