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읍 명월리 군락지 일대가 잡초로 무성한 채 방치

한림읍 명월리 군락지 일대가 잡초로 무성한 채 방치
  • 입력 : 2016. 08.22(월) 15:26
  • 정신종 시민기자 sinjj3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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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 명월리 군락지주변에 잡초가 무성한채 방치된 모습

한림 명월리 군락지주변에 잡초가 무성한채 방치된 모습

도내 중산간마을 중 성지 및 군락지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주위에 잡초가 무성한 채 방치되고 있어 관광명소로 가꿔 나가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한림읍 명월리 마을은 제주서부의 중심지 중산간에 위치한 마을로 북쪽을 향하여 한림 앞 바다가 시야에 들어서면서 서쪽을 향하면 비양도가 운치 있게 나타나고 한림공원과 조각공원, 협재해수욕장이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또한 동쪽에는 멀리 한라산이 솟아있고 남쪽으로 오름과 숲으로 둘려있는 산세가 수려한 마을로써 특히 마을 어귀에는 국내 최대의 400~500년 된 팽나무 군락지, 명월성지와 명월대가 지방문화재로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다.

또 이 마을은 옛날 선비의 얼을 지금도 이어가는 문화마을로서 준범죄 없는 마을과 장수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한림읍 명월리 중동의 마을 중심으로 흐르는 하천 양측에 수령 500년 이상을 자랑하는 팽나무와 푸조나무의 노거수 100여주가 잘 보존된 채 자생하고 있어 팽나무는 도내의 오래된 부락에는 정자목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으나 명월의 팽나무는 노거수집단으로 단순 군락을 이루고 있어 고대 원식상을 추리하는 자료가 되어 학술적 가치가 높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고 있다.

또한 부근에 자리한 명월성은 지역적으로 비양도와 가까운 곳으로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1510년 장림 목사가 목성을 축조하였으나, 선조 25년 목사 이경록이 목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고려원종 12년(1270년) 이문 장군이 삼별초의 근거를 마련, 이듬해 진도에서 이곳으로 옮긴 김통정 장군과 함께 여러 연합군의 좌군과 치열한 격전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 에는 만호 고덕비 5기와 조선 영조부터 고종 32년까지 131년 동안 당시 명월진의 책임자 112인 만호 명단비가 함께 건립되어 있다.

그중 팽나무를 둘러싼 군락지 주위에는 잡초가 무성한 채 방치되고 있어 하천변으로 내려가 살펴 볼 수 조차 없다. 또한 길 건너 백난아 가수노래비 주위에도 풀이 무성해 있는가하면 지난 93년도에 폐교된 명월초등교내 건물내에는 명월리 역사문화가 전시되어 있음에도 답사일이 일요일때문인지 정문이 굳게 자물쇠로 잠겨 있다.

이같은 사실은 때마침 성균관유도회제주지부가 운영하는 사회예절교육지도자 수강생 단체일행이 지난 21일 현지답사에서 확인되었다.

국민가수 백난아노래 기념비주변에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한편 한림읍당국은 명월리 현지 실태를 아직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나 확인되는 데로 매년 여름철에 갖는 이 고장출신인 국민가수 백난아 노래축제와 함께 군락지주변을 잘 정화해 나갈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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