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선 후 3시간 반 만에 일정 '뚝딱'

하선 후 3시간 반 만에 일정 '뚝딱'
[르포]춘절연휴 제주 찾은 크루즈관광객 보니
제주항-용두암-화장품가게-시내면세점 10㎞ 왕복
쇼핑백 양손 한가득 불구 지역골목상권 유입 난망
  • 입력 : 2015. 02.23(월)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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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인 지난 20일 중국인 크루즈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시내면세점과 같은 날 제주외항 서방파제에서 중국의 하청여행사 가이드들로부터 안내를 받으며 크루즈에서 하선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사진 아래).

그들은 제주 땅을 밟은 지 불과 3시간 30분 만에 돌아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경제와 제주관광을 살린다고 홍보해온 크루즈 관광객들 말이다.

설 다음날이자 중국 춘절연휴인 20일 오후 1시 30분쯤 제주외항 서방파제 예비선석에 2만4400톤급 크루즈선인 파나마 선적의 차이니스 태산(CHINISE TAISHAN)호가 접안했다. 본 선석에는 이날 오전 7시 입항해 오후 2시 출항 예정이던 몰타 국적의 9만톤급 셀레브리티 밀레니엄(Celebrity MILLENIUM)호가 아직 출항하지 않은 터였다. 여름과 달리 크루즈가 뜸한 겨울에 대형 크루즈선이 2척 동시 접안하는 일은 흔치 않다.

태산호의 승객 469명은 배 안에서 CIQ(세관·출입국관리·검역) 과정을 끝내고 3시가 다 되어서야 하선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제주도에 사무실을 두고 있지만 중국자본이 운영해 사실상 중국의 하청여행사라 불리는 모 여행사 직원과 가이드 11명이 예비선석 진입로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제주를 찾는 크루즈는 대부분 서양 선적이지만 승객들은 거의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들이다.

"OO면세점 가면 계산대에 붙어서 물건도 좀 팔아야 될 것 같아." 어눌한 한국어 말투로 미뤄 조선족인 듯한 여행사 직원이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가이드 11명을 세워놓고 업무를 지시하고 있었다. 요우커들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11대의 전세버스에 옮겨 탔다.

제주항을 출발한 전세버스는 3시 30분을 전후해 차례로 용두암에 도착했다. 무료 관광지인 이곳에는 마침 '설 연휴 주차요금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중국인 크루즈 관광객들은 용두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면서 제주의 겨울바다를 만끽하는 듯했다.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지팡이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한국인 관광객이 "점령했네"라고 표현할 만큼 압도적 다수였다.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이들이 향한 곳은 용두암에서 2㎞ 정도 떨어진 화장품 판매점이었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 간판에 'DUTY FREE'를 내걸고 요우커들을 끌어 모으던 이 유사면세점이 제주에 뿌리내린 지도 오래다. 30분 정도 머물던 요우커들은 오후 5시쯤 제주 관광의 최종 목적지인 시내면세점에 도착했다. 이들이 도착하자 면세점 안팎이 요우커들로 북적였다.

1시간 정도 지나자 외곽 주차장에 대기 중이던 전세버스가 면세점 인근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아직 쇼핑 중인 이들도 있었고, 면세점 입구에 주저앉아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인근 업소들이 설 연휴여서 대부분 문을 닫은 터라 이날 면세점의 불빛은 더욱 두드러졌다. 요우커가 몰리는 시간에는 면세점 맞은 편 골목 입구에서 '풀빵'을 파는 노점상도 성업이다.

요우커의 씀씀이는 면세점에 가보면 알 수 있다. 한결같이 양손에 쇼핑백을 든 요우커들을 태운 전세버스는 오후 6시 30분쯤 제주항에 돌아왔다. 이들은 이날 3시간 30분 만에 제주항-용두암-화장품 판매점-시내면세점까지 왕복 약 10㎞의 제주관광코스를 소화했다.

제주도가 제주외항 접안시설을 확충하고 크루즈선을 유치해 지역골목상권 유입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지도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태산호 승객들의 사례처럼 크루즈 관광을 통해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전세버스 이용 비용 정도에 불과하다. 굳이 포함하자면 면세점의 지역인력 고용과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와 노점상의 수입 정도를 더할 수 있을까.

이날 요우커들을 태운 전세버스가 떠나고 한산해진 면세점 앞을 제주황금버스가 지나갔다. 중국인들을 위해 운영 중인 황금버스 안에는 기사와 안내인뿐이었다. 지난해 242회에 걸쳐 제주를 방문한 크루즈 관광객은 59만명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약 18%를 차지했다. 올해 예정된 크루즈 입항횟수는 357회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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