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고도 상징했던 축조물 복원의 길 열자제주성은 행정기능 더불어 국가방어체계 중심지 역할일제때 헐린 성곽… 복원 통해 원도심 정체성 찾아야
흐린 하늘 아래 초록잎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돌 틈 사이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식물은 그렇게 생명력을 드러냈다. 돌담에 붙어있던 담쟁이는 희끄무레한 줄기만 남았다.
제주시 남문로터리에서 오현단으로 향하는 길가에 일부 복원된 제주성. '묵은 성'인 고려시대의 고성을 제외하더라도 조선시대 이래 500년 넘게 지금의 제주시 원도심에 자리했던 제주성이지만 불과 80여년전에 허물어졌다. 제주성의 몸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1971년 제주도기념물로 지정된 '제주성지' 안내판이 세워진 오현단 일대와 제주기상청 후문 등 8곳 정도다. 잔존 구간의 길이를 모두 합쳐도 320m 가량에 불과하다.

제주성이 완전히 허물어지기 전 오현단 부근의 제주성 모습. 제주도가 펴낸 '제주 100년'(1996) 사진집에 실려있다.

탐라순력도 제주조점. 제주성 관아의 위치 등이 상세히 나와있다.
제주성이 사료에 언급된 시기는 조선시대. '태종실록'을 보면 1408년(태종 8)에 "제주에 큰 비가 내려서 물이 제주성에 들어와 관아와 민가가 물에 잠기고 곡식의 절반이 침수되었다"고 했다. 1411년(태종 11)엔 제주성을 보수하도록 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1512년(중종 7) 제주목사 김석철이 해자 등 제주성 부속시설을 축조하고 1565년(명종 20)엔 제주목사 곽흘이 을묘왜변의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성곽의 규모를 확대하기에 이른다. 이때 동성을 산지천 밖으로 물려 쌓았다. 1599년(선조 32)에는 성윤문 제주목사가 성벽을 더 높이는 등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성벽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1780년(정조4)엔 산지천이 범람해 민가에 피해가 발생하자 제주목사 김영수가 이에 대비해 간성을 축조하는 등 또한차례 정비가 이루어졌다.
▶식민정책으로 1913년부터 잇따라 헐려=왜 제주성을 쌓았던 것일까.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을 무대로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빼앗던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서다. 제주 관아와 민가를 지켰던 제주성은 행정 기능과 함께 군사적 기능이 중시됐다.
제주에 부임한 제주목사들은 병마수군절제사를 겸했다. 제주도가 국가방어의 최전방 기지였기 때문이다. 제주목사가 배에서 내릴 때부터 관덕정에 이르러 제주판관과 정의·대정현감을 만나고 다시 연희각에서 연회를 마치기까지 과정을 적어놓은 '도영절차'를 보더라도 군례가 등장한다. 군사적인 수장인 제주목사의 위치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제주도의 형상처럼 제주시 중심지를 빙 둘러가며 축조됐던 제주성은 다른 지역처럼 일제강점기 식민정책으로 헐리기 시작했다. 김석익의 '탐라기년'부록에 나와있는 제주성의 철폐 과정을 보자. 1913년 10월 일제에 의해 제주성 북성문이 훼철된다. 1914년 11월엔 연상루(동성 문루)와 중인문(간성 북문)을 헐었다. 이어 1915년 7월 간성인 소민문과 북성을 철폐했고 1918년 11월엔 정원루(남성 문루)가 사라졌다. 1923년 동성에 제주측후소가 개설됐고 1926년엔 제주성을 헐어 성곽을 지탱해왔던 돌들을 산지항 축항 작업에 쓴다. 1927년에는 홍수로 인해 남·북수구의 홍문이 붕괴된다.

제주도 기념물인 제주성지에 복원된 제주성 일부.
▶탐라문화권 수부로 제주문화의 핵심=제주의 고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축조물이었던 제주성이 헐려나간 자리는 찻길로 변했고 주택가로 바뀌었다. 제주성은 그렇게 잊혀져가는 듯 했지만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남아있는 흔적을 붙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져왔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제주성 답사 프로그램도 실시됐다. 하지만 메아리가 없었다. 몇 년 전 남문로터리 인근 제주성담을 볼 수 있던 대지에 고층 주택이 지어질 때 일각에서 거세게 반대하며 제주성 복원을 위해 제주도에서 이를 매입해야 한다고 했지만 예정대로 아파트가 올라섰다.
다행히 한라일보가 지난해부터 기획 보도하고 있는 '천년의 유산 제주성을 살리자' 연재를 통해 제주성 복원·정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제주성 부속 건물에 해당되는 공신정터에 제주지방기상청을 신축 이전하려던 계획은 도내 학술·문화단체 등의 반대로 변경됐다. 탐라문화광장 부지에 포함된 중인문터는 건물 철거후 발굴에 들어가기로 했다.

제주목관아에 옮겨놓은 공신정터 주춧돌.
최근엔 제주시와 제주역사문화진흥원에서 '제주성지 보존·관리 및 활용계획' 보고서를 내고 2023년까지 3단계로 나눠 제주성을 발굴·복원·정비한다는 내용을 담아냈다. 보고서는 "탐라국시대부터 축성되기 시작한 묵은성이 토대가 된 것으로 알려진 제주성은 일제에 의해 차츰 훼손된 이후에도 도시화가 진전되고 개발이 진행되면서 지속적으로 훼손 멸실될 위협에 놓여있다"며 "제주성은 탐라문화권의 수부였다는 점, 다른 지역의 일반 읍성과 달리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대~중세~근대로 이어진 연속성을 지닌 읍치성이었다는 점, 원도심의 공간적 문화정체성을 담지하는 제주문화의 핵심적인 성곽이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20~30년 걸리더라도 추진해야"=보고서에 실린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10년동안 총 530억원을 들여 제주성 복원이 추진된다. 오랜 시간과 예산 등으로 실현 가능성을 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제주성이 있던 곳에 도로가 생겨난 경우가 많아 일부 구간은 사업 시행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주성지 안 옛길은 1914년 일제때 작성한 지적도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어 제주성 복원에 맞춰 원도심의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길이가 약 3.2㎞로 국내 읍성 중에 대규모 성곽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성. 제주의 문화와 역사에 뚜렷한 인상을 남겨온 여러 유적과 기억어린 공간이 제주성지 안팎에 몰려있다. 제주성이 복원된다면 이들이 품은 가치에 한층 풍부한 이야기가 입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원도심 경관이 빚어지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인 김익수 제주도문화재 위원은 "그동안 제주성 복원에 중요한 계기가 될 만한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번번이 놓쳤다"며 "20년, 30년이 걸리더라도 국가방어체계의 중심지였던 제주성 복원을 통해 제주가 지닌 역사문화적 가치를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삼공일프렌즈 제작>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