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더 이상 비밀의 정원은 없다!

[하루를 시작하며]더 이상 비밀의 정원은 없다!
  • 입력 : 2013. 11.20(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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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에 다시 찾은 섭지코지는 매우 낯설었다. 아침운동 삼아 숙소를 나서 걷는데 난생 처음 와 본 곳 같다. 잘 다듬어진 길과 불쑥불쑥 풍경을 가리며 서있는 건축물들이 과거 내 기억 속의 섭지코지와는 영 딴판이다.

20대의 어느 날 친구들과 처음 섭지코지를 왔었다. 드넓은 목초지의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며 내다보던 바다풍경이 참 신비로웠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성산일출봉과 어우러지던 원경은 태고의 자연이 어떠하였는지를 상상케 해 주던 곳이었다. 그 후 지인들이 내게 제주의 비경을 물으면 아주 으쓱한 마음으로 섭지코지를 추천했다. 손때가 묻지 않은 비밀의 정원 같은 그 곳을 소개받은 이들이 매우 흡족해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개발의 바람에 자본은 자연을 잠식해 버렸다. 한동안 난 섭지코지를 찾지 않았다. 내 기억 속 과거의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최근 다시 돌아보고 후회했다. 곳곳에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희끗희끗 얼룩져 있고 세계적인 건축가가 지은 레스토랑이 코지 끝에 우뚝 서 성산일출봉을 가리고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물이라 해도 자연의 아름다움에 비길 수 있을까? 더 이상 비밀의 정원 같은 상상은 할 수 없었다.

이는 비단 섭지코지만의 일은 아니다. 해안과 중산간의 기존 관광지는 물론 부락내 목장부지 등이 개발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대기업에 의한 대형리조트와 호텔 건설 해외자본에 의한 대규모 위락시설 유치가 마을발전의 핵심이 되는 듯 여겨진다. 이 과정에 곳곳의 숨은 비경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개발의 바람이 얼마나 빠른지 다시는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제주의 풍경이 많아졌다.

반면 자연경관에만 의지한 관광에 한계가 있으니 체험과 오락시설 등의 시설물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제주의 최고 자원은 자연이지 위락시설이 될 수 없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하는 체험시설들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인데 이를 파괴하면서까지 들어선 시설들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질지는 의문이다. 화려하고 높은 시설물은 자본의 능력에 따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자연은 복제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자연의 가치는 무한하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얼마 전 서울 친구의 사무실에 들렀다. 한강이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더구나 그 앞으로 여의도밤섬이 녹음을 머금고 있다. 덕분에 강 건너 고층빌딩숲을 보는 게 한결 편하다. 멀리 지는 해를 받고 반짝이는 건물이 보인다. 63빌딩이다. 1985년 완공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빌딩으로 주목 받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의 많은 고층건물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100층 넘는 빌딩들이 전 세계 곳곳에 세워지는 실정이고 보면 그저 높이로만 승부를 하던 유명세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느끼게 한다.

친구는 이곳 풍경이 멋있는 것은 밤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변북로를 타고 달리는 자동차와 강 건너 빌딩숲은 사시사철 똑같은 모습이지만,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밤섬의 자연은 항상 다르기에 창밖의 풍경에 생기를 준다고, 역시 자연의 신비를 인공조형물이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제주의 속살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는 요즘 누군가 내게 제주의 비경을 묻는다면 더 이상 비밀의 정원 같은 곳은 없다고 할 날이 멀지 않았다. 성형수술을 하듯 인공시설에 뒤덮여버려 여느 관광지와 닮은꼴로 변하는 제주가 과연 매력적인지 묻고 싶다. <조미영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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