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제주미협 70년의 결, J-Art의 거점으로

[월요논단] 제주미협 70년의 결, J-Art의 거점으로
  • 입력 : 2025. 12.22(월) 01:00  수정 : 2025. 12. 22(월) 02:05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제주미술협회(이하 제주미협)가 창립 70년을 맞았다. 1955년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나 시대를 거슬러 변화를 거듭해 온 제주미협의 창립 배경과 창립을 주도했던 선배 미술인들의 결기와 도전 의식을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 정신은 제주의 역사가 그렇듯이 중앙의 변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주미협의 창립은 중앙 조직의 계보를 따르는 수동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현재의 '한국미술협회'가 출범한 1961년보다 6년이나 앞선 1955년 2월, 제주 미술가들은 '제주도미술협회'의 깃발을 올렸다. 당시 중앙화단은 정부 수립과 더불어 창립한 '대한미술협회'(1948년)와 그에 반발해 새로 출범한 '한국미술가협회'(1955년)로 양분돼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인지를 비롯해 박태준, 강용택, 조영호 등 제주 작가들과 장리석, 홍종명 등 피난 작가들이 관덕정 인근 미공보원에 모여 창립을 선언했다.

다시 정리하면, 제주미술가협회는 중앙화단의 분열기에 탄생한 자생적 단체이자 같은 해에 출범했던 한국미술가협회와의 연대를 통해 탄생했다. 1961년 군사정변 이후 정부의 예술단체 통합정책에 따라 중앙화단의 두 협회도 합쳐져 현재의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체제로 재정비됐고, 제주미협 역시 '한국미술협회 제주도지회'로 편재된 것이다. 제주미협의 역사는 변방의 소외를 극복하고 제주만의 독창적인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려 했던, 자생적이고 선구적인 결단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제주 출신 작가들은 제주미술의 기틀을 잡고 외연을 확장하며 국제적인 감각을 수혈하는 역할을 했다.

창립 이후 제주미협은 섬의 정체성을 현대적 미술 문화로 끌어올렸다. 지난 70년은 제주의 미술계를 다지고 제주의 자연과 정서를 '제주 화풍'이라는 독보적인 장르로 정립해온 시간이었다. 변시지의 폭풍의 바다, 김택화의 제주의 빛, 양창보의 수묵화, 현중화의 서예 등은 한국 미술사 안에서 제주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제주미협은 회원들의 권익 옹호를 넘어 제주미술제를 통해 미술의 저변을 넓혔고, 제주도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 등 공공 자산의 기틀을 닦는 데 역할을 수행하며 '예술의 섬' 제주를 세워온 기반이 됐다. 이후 탄생한 탐라미술인협회와 한라미술인협회 그리고 서귀포미술협회는 제주미술의 정체성을 다변화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해 온 단체들이다.

제주미술이 글로벌 예술 허브가 될 'J-Art의 거점'으로 자리 잡기 위해 가야 할 길이 멀다. 제주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화해 아시아와 환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국제 미술 교류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레지던시, 비엔날레, 제주미술제, 미술관, 미술시장 등의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70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예술 조직을 일으켰던 선배들의 손에는 희망이 쥐어져 있었다. 오늘 우리는 그들이 보여줬던 결기와 도전 의식을 되새기고 실천해야 할 때다. <김영호 중앙대 명예교수·미술사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98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