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만의 월요논단] J-Culture, 마음의 스크린이 켜지는 순간

[양복만의 월요논단] J-Culture, 마음의 스크린이 켜지는 순간
  • 입력 : 2025. 11.03(월) 01:0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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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불이 꺼진 영화관 안, 세상의 소음이 잠시 멎는다. 스크린 위에 비친 낯선 얼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의 오래된 기억이 깨어난다. 웃음 속에서 묻어둔 상처가 드러나고, 눈물 속에서 낯선 이의 고통을 마주하며 마음의 숨결을 느낀다. 그때 문득 깨닫는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세상은 여전히 나를 품고 있구나. 그 짧은 깨달음이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

영화는 마음의 언어로 말한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콧은 인간이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자신을 치유하는 장소를 '전이 공간(Transitional Space)'이라 불렀다. 영화는 바로 그 경계 위에 존재한다. 현실을 잠시 벗어나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현실보다 더 깊이 자신을 만난다. 그것은 내면을 정화하는 하나의 의식(ritual)이다. 스크린 속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내 마음의 그림자를 비추며, 묵은 감정의 먼지를 털어낸다.

얼마 전 제주영화제에서 만난 문숙희 감독의 '인생세탁소'는 그 힘을 다시 일깨워줬다. "구겨진 인생은 펴면 되고, 삶이 힘들 땐 다시 살면 된다"라는 대사는 단순한 감동이 아니었다. 인생이 아무리 구겨져도 세탁처럼 다시 정화될 수 있다는 울림이었다. 영화는 그렇게 우리를 씻기고, 다시 걸음을 내딛게 한다. 어쩌면 영화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예술, 존재의 깊은 층을 닦아내는 심리의 세탁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영화관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 OTT 플랫폼은 편리하지만, 스크린에서 누리던 고독한 몰입과 공동체적 감정의 파동은 희미하다. 영화관의 어둠은 단순한 시각의 암전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와 조용히 화해하던 내면의 공간이었다.

정부가 'K-Culture'를 미래의 동력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속에 'J-Culture'를 더하고 싶다. 제주의 바람, 제주어의 억양, 그 섬의 시간은 이미 하나의 문화적 언어다. 지역의 정서와 예술이 스크린 속에서 세계로 나갈 때, 그것은 단지 한류의 확장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치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의 예술가들이 숨 쉴 수 있는 토양, 제주의 이야기가 세계로 번역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지역 문화는 변두리가 아니라, 세계를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지식을 키운다면, 예술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킨다. 그리고 영화는 그 둘을 잇는 가장 아름다운 통로다. 스크린 속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마음을 단단히 다듬는다. 그 만남의 순간, 배움과 감성이 하나로 이어져 인간을 성장시킨다.

스크린 앞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자신에게 향하는 문을 연다. 그 빛이 꺼지지 않는 한, 인간을 향한 위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J-Culture가 켜는 스크린이 세계의 많은 이들의 하루를 다시 걷게 하는 불씨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양복만 제주맨발학교장·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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