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면의 일*-고주희
[한라일보]하루 재워둔 수돗물을 분무기에 담는다
설렘은 밤새
동글게 말았던 연두 잎을 다 펼쳐
나는 사랑받는 풀처럼
예쁘다, 장하다 연발인데
보이지 않는 뒷면에 물을 뿌리며
그때는 왜 몰랐을까, 혼신으로 앞면을 닦아내며
그러나 눈물을 마시는 쪽은
거친 솜털이 있는 뒷면
*「뒷면의 일」 부분

삽화=배수연
뒷면은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반지레한 것에 대한 애정이 투사되어 보는 자가 꿈꾸는 '예쁨'과 '장함'이 앞면에 담긴다면, 알 수 없는 아름다운 무늬로 혼자 뚝 떨어져 있는 뒷면은, 궁금하다. 둘 사이엔 어떤 조합이 있고, 일체의 구조로 되어 있다. 그중, 어떻게 보면 삶의 양태는 표면이랄 수 있는 생각의 앞면을 좇아서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혼신으로 '앞면'을 닦으며 살지만, 종종 뒷면이라는 무의식에 빠지고, 존재는 앞에서 햇빛을 받지만 생명의 숨구멍은 뒤에 있다. 평범한 익명인들은 선명한 앞에서 선명하지 않은 뒷면을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존재는 앞과 뒤, 두 얼굴을 가진 한 생명체이다. 오늘, 고주희의 "뒷면의 일"은 피상적이지 않아 거기는 "거친 솜털"이 있고, "눈물을 마시는" 구체이다. 인간의 눈물이란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속으로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물이면서 현상이다. 거기서 시가 나왔다. 각도가 나오지 않은 데서는 '설렘' 외에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약간의 땅'에도 분투가 있고, 죽음이 있으니 우리가 앞면 이상으로 뒷면을 알아볼 수 없다면 이러한 격하고 모호한 세상에서 우리를 궁지에서 벗어나게 해줄 면은 어디인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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