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이 가고 있다. 6월은 보훈의 마음과 함께 뭔가 잊고 있는 게 아쉬운 듯 여러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어렸을 적 농촌에서 현충일과 6·25에 즈음해서 갖던 생각은 유치하다. 현충일은 그 시기가 보리 수확과 비슷해서, 날씨를 걱정하며 까끄라기와 땀 범벅으로 고생할 고민을 먼저 했다. 25일은 보통 장마와 함께 왔는데, 큰 농사가 끝나고 비가 오면 밭에 일을 나가지 않아도 돼서 그때가 반가웠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이들의 충혼을 기리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공유하는 데는 그 후 시간이 많이 흘러야 했다. 어느 달에 대해 각자가 갖는 생각은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겠다.
늘 잊히지 않는 6월의 장면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가 있다. 이 대회는 우리나라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에 이어 치르는 국제 행사였다. 참혹한 전쟁이 끝나고 불과 35년 만에 하계올림픽을, 50년이 채 되기 전에 초대형 국제 대회를 개최하는 일은 기적에 가까웠다.
더욱이 1997년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세계는 '한국은 이제 끝났다'면서 월드컵 개최권도 반납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는 이런 예상을 깨고 수십 년 걸릴 것으로 예견됐던 IMF의 관리를 불과 수년 만에 벗어났고 대회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훌륭한 외국인 감독의 지도에 힘입어 사상 최초로 4강에도 진출했다.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다.
그 6월은 우리 국민의 저력을 맘껏 보여줬다. 5월 31일 시작하여 6월 말까지 이어진 대회 기간, 큰북의 울림에 이은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소리와 붉은 악마 유니폼의 색깔은 온 나라를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국민은 남녀노소 모두 하나가 됐다.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악마'들이 질서정연한 '광란'을 함께 즐겼다.
요즘도 우리나라 축구는 대단하다. 대표팀은 월드컵대회 본선에 11회 연속 진출하고, 여러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세계를 누비고 있다. 이는 K-팝과 한류 영화에 이은 K-스포츠로서, 양궁·배드민턴·탁구·야구·배구·스케이트 등과 그 성취를 함께한다. 우리는 이런 역량과 위상을 갖춘 국민이다.
그때 국민 응원을 주도한 그 젊은이들의 영민함을 기억한다. 그들은 모든 국민을 텔레비전 앞에, 나라 곳곳의 광장에, 한마음으로 모여들게 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초대형 카드섹션을, 경기장에 들어선 관중을 대상으로 연습 없이 가능하게 지휘했다. 국민을 하나로 묶은 그 창의적 발상과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동한다. 그 젊은이들은 국민의 애국심과 단결력을 제대로 선도할 줄 아는 진정한 지도자들이었다.
요즘 시국이 참으로 어지럽고 어렵다. 그때 그 젊은이들의 통솔력이 그립다. 국민이 모두 하나 돼 대한민국을 위해,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해, '대한민국'을 한 달 내내 외쳤던 2002년 6월의 그 함성과 에너지가 사무치게 그립다. <이종실 제주문화원 부원장·수필가·시인>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