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호의 문화광장] ISMN(International Standard Music Number)

[홍정호의 문화광장] ISMN(International Standard Music Number)
  • 입력 : 2025. 06.24(화) 00:0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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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표선윈드오케스트라(음악감독 강 훈) 창립 10주년 기념 창작곡을 의뢰 받았다. 출판을 하려고 보니 전 세계적 공통으로 사용되는 음악 악보 저작물관리 번호체계가 놀랍게도 대한민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예술가로서, 작곡가로서 느끼는 감정은 국가적 소외감이며, 선진국 대한민국 국격에 관한 부끄러움이다.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게 바란다.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이들은 자본이 투자된 K-팝, K-문화 수출 구호에 안주하지 말고 그 바탕을 이루는 창작가들의 성장과 생존에도 눈을 돌려주길 바란다. 새 시대에 걸맞은 형식과 체계를 마련해, 한국 음악이 단단히 뿌리내리고 세계속에 한국 창작음악이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촉구한다. 문화예술의 나라 대한민국 미래에 관한 오늘의 투자이다. ISMN(International Standard Music Number) 도입은 그런 미래를 위한 작은 시작일 수 있다.

이 ISMN 체계의 도입은 단순히 유통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창작가 가운데에서도 작곡가의 예술세계를 구별하고자 하는 철학적 요청이자, 음악을 문화유산화(文化遺産化)하는 관점이다.

ISMN은 1993년부터 시행된 음악 출판물의 고유 식별 번호 체계다. 도서 출판물의 ISBN이 책 한 권 한 권의 정체성과 유통 구조를 책임지듯, ISMN은 음악 출판물을 체계화해 유통, 판매, 도서관 소장, 아카이빙까지 유연하게 연결한다. 유럽, 북미, 일본 등 주요 음악 출판 국가의 공통체계로 사용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아직 ISMN 공식 발급체계가 없어 ISBN을 대체 수단으로 쓰거나 아예 고유 번호 없이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ISBN을 쓰면 되지 않나?" 음악 악보를 단순히 한 권의 책처럼 취급하는 것은 정책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음악창작출판물에 대한 인식과 음악의 고유한 유통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 작품과 음악 작품은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시집은 텍스트 위주의 고정된 콘텐츠로 한 권의 도서가 곧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다. ISBN 체계에서 도서의 판본, 개정, 출판사를 구분하기만 하면 족하다. 그러나 음악은 한 작품이라도 다양한 편성, 조성, 편곡, 버전, 연주 형태에 따라 무수히 변주될 수 있다. 같은 악보라도 오케스트라용, 합창용, 독주용, 축약 악보 등 수많은 파생물이 출판되며, 이를 ISBN 하나로 묶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ISMN 체계 안에서 각 출판물을 고유하게 관리해야 음악 작품의 유연성과 확장성이 온전히 담긴다. 더군다나 세계화에 발을 내딛고자 한다면 ISMN은 최소한의 자격요건에 해당된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한국의 음악계가 진정 젊은 작곡가들이 마음 놓고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에 전업 작곡가가 클래식 음악을 쓰며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는가? <홍정호 제주아트센터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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