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마이너리그’, 그 중심에 서서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마이너리그’, 그 중심에 서서
  • 입력 : 2024. 03.20(수)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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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사는 것도 정말 별거 아니야. 말하자면 내가 세월과 함께 닳아가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돼. 산에 한번 가봐. 전나무숲, 대나무숲, 소나무숲, 이름은 그렇게 붙이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전나무 소나무 입장에서만 본 거지.

사실 숲을 우창하게 만드는 것은 이끼같은 거, 그리고 드렁칡 같은 하찮은 식물이더라고.

- 은희경 장편소설 '마이너리그'(2001) 중에서

오래전 읽었던 책속의 한 구절이 불쑥 관자놀이를 찌르듯 파고들 때가 있다. 예기치 않은 변화로 일상의 저변이 휘청일 때, 그로인한 불안감이 늪처럼 몸을 잠식할 때, 그럴 때면 어김없이 주문처럼 마음에 적어 넣는 시가 있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중얼중얼 내뱉게 되는 구절들이 있다. "내가 끌고 가는 삶의 시간이 불현 듯 뻣센 가시처럼 목구멍을 깊숙이 찔러왔다"도 그 중 하나다. 은희경 소설 '마이너리그'의 말미에 나오는 구절이다.

1958년 지방도시에서 태어난 평범한 4인방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소설은 마치 삐에로의 눈물처럼 유독 씁쓸한 여운을 몰고 왔었다. 그들은 10월 유신, 10·26, 5·18, 6·10의 시대를 지나왔으나 정작 눈앞에 놓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급급한 삶을 살아왔다. 시대의 언저리를 스친 그들의 삶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시대정신과는 동떨어진 듯 하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향해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평범한 다수의 삶을 보여준다.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지만 충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소한 것에 흔들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에 울고 웃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하는 사람들. 그들은 시대를 비켜섰으나 시대의 광풍은 어떤 방식으로든 어김없이 삶을 관통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수의 삶이 '마이너리그'일지언정 각자 삶의 중심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다수의 '마이너리그'인 삶이 '메이저리그'의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에 있을 것이다.

지인이나 친구를 만나 나누게 되는 대화 속에서 나, 혹은 우리의 이야기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생각해본다. 스마트폰이 없이 일상이 불가능해진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타인의 삶은 쉽게 동경의 대상으로 향하고 먼지보다 가볍고 흔하게 날리는 것이 가십거리인 것이 현실이다.

제 각기 아등바등, 행복의 기준도 각기 달라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정답 또한 수천 수만 가지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와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소소한 마찰들은 모두에게 주어진 무게일 것이다. 개인의 삶도, 시대의 흐름도 천천히 들여다보면 희로애락이 담겨있기 마련이고 부와 권력을 떠나 사는 게 녹록치 않음은 피장파장일터,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증식하는 '이끼'와 '드렁칡'이 지금 이 시대를 건강하게 지켜내기를 바라는, 봄이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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