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녀를 말하다](8)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해녀

[한국 해녀를 말하다](8)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해녀
2007년 태안 앞바다 원유 유출사고 피해 후유증 여전
  • 입력 : 2017. 08.31(목) 00:00
  • 고대로 기자 bigroa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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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면 해녀회 영어조합법인 해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해녀배 타고 6개 마을어장 번갈아가며 물질
지금도 제주해녀 수십명 이곳 오가며 물질
해녀 채취한 해산물소득 절반은 선주의 몫
수심 4~6m 사막화의 주범인 갯녹음 진행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모항항.

꽃게와 해삼, 전복, 붕장어, 오징어, 전어, 대하 등 싱싱한 제철 해산물이 넘쳐나는 활기찬 시골 어항이다.

소원면해녀회영어조합법인(회장 김계자·80) 해녀들은 모항항을 터전으로 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분주한 모항항의 새벽

영어조합법인 해녀 50여명 중 현재 물질하고 있는 해녀는 33명. 이 중 현지 출신 해녀는 2명이다. 가장 젊은 해녀는 59세로 대부분 60~70대들이다. 이달 현재 태안군 89개 어촌계 해녀는 100여명. 지난해말 기준 충청남도 238개 어촌계·나잠어업인(해녀)은 1283명이다. 제주출신해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이들 제주 출향해녀 대부분은 10~20대에 바다를 건너와 이곳에 정착해 살면서 50~60년 동안 물질을 하고 있다. 해녀배 선주가 마을어촌계와 바다를 임대계약하면 그 임대한 마을어장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채취한 해산물소득의 절반은 선주의 몫이다. 해녀들은 선주에게 매달 월급형식으로 돈을 받는다.

해녀들이 직접 바다를 임대해서 물질을 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낸다.

바다로 뛰어들고 있는 해녀(사진 왼쪽)와 태왁과 망사리를 이용하지 않고 물질을 하는 상군해녀가 옷안에 보관 중이던 전복을 꺼내고 있는 모습.

김계자 회장은 "작은 마을어장 가격이 보통 7000만~8000만원이다. 해녀들이 어장을 사서 죽도록 물질을 해도 손해볼 때가 많다. 그래서 선주들에게 바다를 사라고 했다. 오늘 물질가는 의항리 바다 가격은 2억 6000만원"이라고 했다. 소원면 해녀회가 물질작업권을 갖고 있는 어장은 의항리·만리포·모항·모항2구·모항3구·파도리 등 6개이다. 이들 마을어장을 번갈아가면서 물질을 한다. 태안군청에서 이들에게 2ha 규모의 양식장을 주었지만 수심이 깊어 물질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취재팀은 지난 8월 5일 오전 6시 소원면해녀회 영어조합법인 해녀 10여명과 같이 모항항에 정박중인 해녀배(순환호·연안복합 9.77t)에 올라탔다. 모항항의 해녀배는 3척이다. 2척은 영어조합법인 해녀들의 작업배이고 1척은 현재 제주에서 왔다갔다하면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작업배다. 이들의 숫자는 소원면 해녀들보다 많다고 한다. 선주 3명이 공동으로 마을어장을 임대했기 때문에 해녀배 3척은 늘 같이 움직인다.

한 해녀가 채취한 전복을 물 위로 들어보이고 있다

순환호 선주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출신 이순옥 순환수산 대표이다. 서산수협중매인이기도 한 이순옥씨는 오전에는 해녀들과 같이 물질하고 오후에는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순환호가 잔잔한 서해 바다를 가르면 약 30여분을 달려 의항리 마을어장에 도착하자 해녀들은 배위에서 차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의항리 바다는 기암절벽이 해안을 따라 병풍처럼 이어지며 절경을 이루고 있었고 갯바위마다 낚시꾼들이 대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머물면서 갯바위에 글귀를 남겼다고 전해지는 아름다운 태백 해변도 눈에 들어왔다.

물질 포인트에 해녀들을 내려준 정흥영 순환호 선장은 잠시 바다위에 정박한 후 물로 바닥을 청소하고 나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는 곳을 오가기를 반복했다. 해녀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동시에 이들이 잡은 해산물을 중간 중간 받아서 배위에 실어주고 해녀들이 다시 가벼운 몸으로 물질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다. 제주에서 물질을 나온 제주해녀들을 태운 '시호크(SEA-HAWK)'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바닷속에서 물질을 하고 있는 해녀의 모습.

다른 지역과 달리 이곳의 상군 해녀들은 태왁과 망사리를 갖고 물질하는 중군·똥군(하군)들과는 달리 오리발에 물안경, 빗창(전복 따는 도구), 고무옷 위에 환한 무늬색상의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물질했다. 전복을 잡으면 티셔츠 속으로 집어넣고 티셔츠 안에 전복이 가득차면 배위로 올라와서 내린후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전복채취 작업을 하는 상군의 몸놀림은 마치 물개가 헤엄을 치는 것과 같이 빠르고 유연했다. 상군은 하루 평균 10만~20만원, 똥군은 5만~7만원을 번다고 한다.

이곳의 바닷속 상황은 어떨까? 취재팀은 수중 생태계를 조사하기 위해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암반으로 이뤄진 수심 4~6m에는 바다 사막화의 주범인 갯녹음이 진행돼 있었다. 해조류가 없는 수중암반에는 성게와 별불가사리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암반에 부착해 있는 감태와 파래도 관찰됐으나 빈도수는 제주바다와 비슷했다. 놀래기류들은 탐사대의 접근을 피해 도망치기에 분주했다.

수중탐사를 마치고 배위로 올라 오자 정 선장은 이곳 바닷속 상황에 대해 물은 후 "지난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 원유 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기름이 나오고 있는 곳이 있다"며 "이전에 비해서 바다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선장이 배 위에서 해녀들이 채취한 전복 무게를 재고 있다.

취재진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정 선장은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배위로 올라오자 저울로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의 무게를 재고 기록했다. 전복 등 해산물의 가격은 매일 선주가 책정한다.

이날 약 4시간 30분에 걸친 물질을 마친 마지막 해녀가 배위로 오르자 선장은 선수를 모항항으로 돌렸고 오전 11시 30분 항구에 도착했다. 이날 취재팀의 동승을 흔괘히 허락해 준 이순옥 선주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해산물 판매장에 보관 중인 전복에게 줄 감태를 한 망사리 가득 채취했다.

지난해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자 태안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부터 해녀들에 대한 지원을 본격 시작했다.

모항항내에 탈의실 기능을 갖춘 해녀휴게실을 짓고 있고 태안수협에서 3년전부터 나이순으로 지급해 주던 고무옷을 1년에 2벌, 자부담 50%로 지원키로 했다.

홍성의료원에서 잠수질환 치료장치인 '챔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3회 이상 이용시 치료 비용을 내야 하고 홍성의료원까지 자동차로 1시간 이상이 소요돼 해녀들이 이용을 기피하고 있다.

해녀들은 모항항내에서 자신들이 채취한 해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해녀식당을 수년동안 요구하고 있지만 용도 변경이 안돼 허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취재팀과 함께 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의 고단한 뒷 모습을 보면서 취재팀은 유럽 각지를 방랑하며 살아가는 집시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곳에 정착해 50~60년동안 태안군 앞 바다에서 물질을 했지만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바다는 없기 때문이다.

특별취재팀=고대로 부장, 강경민 차장, 김희동천·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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